여담 세 번째 지원사업을 시작하며
문득 궁금해져 찾아보니 서울 인구가 955만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니, 약 20%가 한 지역에 모여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서울 땅이 그만큼 넓은 것도 아닌데. 대전은 얼마나 되려나 궁금해서 검색해봤더니 145만이었다. 서울에 한참 못 미쳤다. 그걸 보고 결심한 적이 있다. 문과에겐 한없이 냉랭해 일자리를 잘 주지 않는 대전을 떠나야겠다. 돈 되고 트렌디한 것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거기로 가야겠다. 그러다가도 자꾸 내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서울 인구의 반도 안 되는 ‘대전’에서, 또 그 반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 ‘여담.' 그리고 우리와 함께 대전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일을 벌이는 여성들을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계속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결심을 굳게 하고 앞으로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담은 주말이면 무조건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이 넘도록 줌에서 만난다. 회사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일요일 저녁이면 멤버들은 하나둘씩 모여 서로 근황을 나눈 뒤, 여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결정할 사안은 토론을 통해 방향을 정한다. 이렇게 매주 만나 회의를 하면서 여담을 굴린 지도 어느새 햇수로 3년째. 그동안 우리는 총 9팀을 인터뷰하고 2개의 지원사업을 마무리했으며, 얼마 전에는 어엿한 정식 ‘비영리단체’가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원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지 고민하다가,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인터뷰하고, 새롭게 여성 소모임을 만들어 운영해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회의를 하고 또 했다. 사업 이름을 정하고, 계획서를 쓰고, 세세한 예산을 짜는 건 지원사업 2개를 마친 경험이 있어도 꽤나 힘에 부쳤다. 오전에는 2시간이 넘도록 줌에서 멤버들과 열띤 토론을 하고, 오후엔 아예 멤버를 만나 구체적인 사업 이야기를 나누느라 3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여담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고 기가 빨린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덜 힘들었다. 올해도 재미있겠구나, 이제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들이 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걱정도 꽤 많다. 멤버 전원이 따로 본업을 두고 '사이드 프로젝트'로서 여담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 프로젝트 진행이 잘 될까, 대전에 있지 않은 멤버들도 여럿 있는데 괜찮을까 하는 것들. 신나게 이것저것 해보자고 이야기하다가도, 그럴 여력이 되는지부터 확인하는 일은 우릴 맥 빠지게 할 때가 많았다.
사실 나도 언젠가 또 서울로 갈 결심을 하고, 진짜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당장 내가 살아갈 곳이 955만 명이 사는 서울이 아니라 대전이라면, 지금은 아예 뒤를 돌아 앞을 향해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살아갈 곳이 여기라면, 내가 가는 쪽이 앞이 되도록. 그리고 내 옆엔 함께 가는 여성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가능할 때까지 계속 여담 활동을 이어가 볼 생각이다. 우리가 쥐여주는 마이크 소리가 지금은 넓은 곳까지 퍼지지 못하더라도, 천천히 한 명씩 전달하다 보면 언젠가 그게 모여 정말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그 소리를 듣고 마이크가 없던 사람도 '나도 마이크를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여성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마이크를 들게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여담이 이곳저곳에 열심히 마이크를 쥐여주어야겠지. 그때가 되면 나도 대전에서 계속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을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얼른 일요일 회의 시간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