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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성 Oct 09. 2023

함은 소도시의 작은 보습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이십 대로 한창 외모를 가꾸고 싶을 만한 시기였을 테지만 그는 흔히 사회가 규정짓는 여성스러움과는 거리를 멀리 했다. 머리는 귀 밑에 찰랑거리는 정도의 숏컷을 고수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동그란 테가 유독 돋보이는 안경을 썼으며 출근 복장은 언제나 수수한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다. 성격이 사근사근한 편도 아니라 항상 엄격한 눈빛과 무뚝뚝한 저음의 말투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까불면 이따금 얼음 같던 무표정이 토도독 깨지면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야 이 새끼야!


그런 함은 무섭고 어려운 사람이었을까. 아니, 사실 함은 단연코 학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선생님이었다. 사춘기 특유의 괴팍한 장난기로 똘똘 뭉친 소년들은 그와 투닥거리는 것을 지루한 학원 생활 중 한줄기 단비 같은 재미로 여겼다. 언젠가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마저 생략한 채 우리는 그를 성만으로 짧게 불렀고 심지어는 부러 말을 놓기도 했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선생님을 함이라고 부르길 주도한 무리에 속했다. 우리는 마치 좋아하는 친구를 일부러 골리면서 울리려 드는 철부지 어린이들처럼 굴었다. 열여섯은 그게 잘못된 행동인지 모르지 않을 만큼 머리가 굵은 나이지만 알면서도 잘못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나이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처음 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함은 불같이 화를 냈다.


함. 이 문제 못 풀겠는데.

함. 시험 보기 싫어.

함. 함. 하-암.

이것들이 미쳤나.


함이 버럭하며 핏대를 세울 때마다 우리는 여름밤 가로등 불빛에 덤비는 부나비 떼처럼 포닥거리며 즐거워했고 끝내 함은 소년들의 버릇없는 언행에 두 손 두 발 들었다. 어느새 소년들 사이에서 그를 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함과의 친밀도를 입증하는 암묵적인 증표로 통하게 되었다. 우리는 국영수만큼 자주 돌아오지 않는 과학 수업 시간만 되면 함과 누가 더 친한지 증명하려는 것처럼 하잘것없는 경쟁심을 불태웠다. 




뒤늦게나마 함이 우리로 인해 마냥 고통받았던 건 아니라고 열여섯의 나를 대신해 변명을 덧붙이고 싶다. 누나 언니처럼 가까운 사이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보람을 느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표정이라곤 오직 무표정만 짓는 줄 알았던 함이 때로는 우리에게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들도 있었다. 어느 날 함이 벌겋게 상기된 표정을 미처 감추지 못한 채 교실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으레 무슨 사건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고 질문 공세를 펼쳤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함은 아직 가시지 않은 화의 감정과 학생들에게 다 털어놓으면 안 된다는 이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그 사람이. 


함은 ‘그 사람’의 정체를 결코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학원에서 제법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던 중년 남성. 사회 경력이 짧은 신출내기가 상사와의 트러블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듯 함은 종종 ‘그 사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다. 단지 그 사람이, 라는 말에 덧붙인 한숨소리만 듣고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함의 편이 되어주려고 아우성을 쳤다. 그 사람이 갈궜죠. 그 사람 진짜 꼰대라니까요. 자칫하면 교실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나갈까 싶어 함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낮게 쉿 했지만 입술 끝에는 의외의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우리는 함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싶은 날이면 앞다투어 그 사람을 욕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십 대 학생들과 숙맥 선생님은 서로만 아는 비밀을 공유하며 기묘한 유대감을 키워갔다.




그 무렵 나는 열여섯의 여름방학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얼른 학교에 가서 P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짝사랑의 열병이 깊어만 가던 탓이었다. 방학이라고 마음 편히 놀 수만은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우리 지역은 고등학교도 성적순으로 진학하는 곳이었기에 남은 한 학기를 대비하기 위해 모두 매일같이 학원에 모여 공부해야 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머리를 감싸 쥐고 있을 때였을까. 열린 문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말이 불현듯 귓전을 울렸다. 야 P 여자친구 생겼다며.


나는 황급히 교실 밖을 두리번거리며 이야기의 진원지를 찾아보았지만 소식을 물고 온 제비들은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가만히 복도에 서 있다가 팔다리가 후들거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P에 대한 일방적인 연정은 결코 이루어질 리 없으니 언젠가는 단념해야 할 거라고 끝을 대비해 왔으면서도 혹시나 만약에 따위의 기대를 버리지 못했던 내게 ‘여자친구’란 말은 짝사랑의 종말을 선고하는 것만 같았다. 끝이 예상보다 너무 일찍 찾아왔고 마음의 대비는 예상보다 한참 부실했다. 내가 남몰래 가꾸어 왔던 세상이 시험지 위에서 받침을 잃은 글자들처럼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환청을 들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P가 내가 아는 그가 맞는지 동명이인인지 또는 둘 다 아니고 B라고 말한 건데 내가 P로 잘못 들었는지 수없이 머릿속 테이프를 되감으며 그 순간을 재생해보려 했다. 그러나 결국 진실보다도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이미 크게 부서졌다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그것 봐. P는 게이가 아니잖아. 넌 걔와 사귈 수 없어. 너는 혼자 남아 영원히 외로울 거야. 막연하게 외면했던 두려움이 운석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 나의 작은 온실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다신 복구할 수 없는 상흔이 남았다.


학원에서 가장 시끄러운 아이 중 하나였던 나는 그날 이후 전혀 입을 떼지 않고 조용히 구석에 엎드려 모든 수업을 포기했다. 선생님들은 고등학교 진학을 반년도 남기지 않은 중요한 시기에 손을 놓아버린 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어르고 달래려 했지만 난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의 세계가 어떻게 붕괴되었는지 설명해도 모를 테니까.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아무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외로움만 부풀어 갔다.




아마 그날도 변함없이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교실로 들어온 함이 평소처럼 수업을 시작하려다 말고 문득 내 방향으로 걸어오더니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가만히 기다리는 함을 마주 응시하다가 나는 왠지 나도 모르게 입을 떼고 물었다. 함. 마음이 힘들 땐 어떻게 해요. 어쩌다 입을 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상대가 함이었기에 말을 꺼냈으리라. 고작 열여섯 살이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뭐가 그리 힘드냐며 정신 차리라고 채근할 수도 있었지만 함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서 내 손에 건네고는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주었다.


여기 들어가 봐. 비구니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힘든 일이 있으면 여기에 다 털어놔.


쪽지에는 절의 이름으로 보이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불교를 믿지도 않는데 스님에게 고민 상담을 한다니 선뜻 와닿지 않았지만 일단 집에 돌아와 함이 알려준 카페에 접속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갈하게 전하는 카페에는 보기 드문 경건함이 감돌았다. 나는 곧 사람들이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는 게시판을 발견했다. 가족이 미운데 어떡하죠. 오늘 연인과 헤어졌어요. 일을 그만두고 싶어요. 사람들은 주변에 쉽사리 나누기 힘든 속세의 고민을 모아 속세를 떠난 스님에게 토로했고 스님은 아래에 일일이 Re:를 붙여 답글을 남겼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길. 인연이 다 된 것이니 마음 쓰지 마시길. 조용히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끝에서부터 하나하나 목록을 읽어나가던 나는 어느 글에 이르러 문득 얼어붙었다. 함의 글이었다. 닉네임이지만 함이 썼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함은 힘든 일이 많았는지 여러 편의 글을 연이어 남겼고 불과 며칠 전에 쓴 글도 보였다. 함은 이곳에서 자신을 어지럽게 괴롭히는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함의 고민이 나와 같은 결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스쳐간 인연으로 인해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는 경험을 겪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의 슬픔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한 대목에서 함은 절에 들어가는 것을 고민한다고 썼다. 몇 년 후에는 스님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고, 절에 들어가기 전에 스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도 적었다. 지금 곁을 맴돌고 있는 사람으로 인해 무너졌던 과거의 흔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함은 속물적인 번민을 겪는 자신을 탓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날 선 벼랑 위에서 위태로운 발걸음을 옮기는 듯이. 어쩌면 함이 홀로 안고 있던 고통은 속세와의 연을 끊어야 할 만큼 이미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늘 겉으로 덤덤해 보였던 함이 속으로 이만한 번뇌를 거듭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그가 무척이나 가여운 동시에 고마워졌다. 자신의 상처가 노출될 것을 무릅쓰면서까지 이 비밀 공간을 알려준 건 그만큼 내가 치유받기를 진심으로 바라서 베푼 도량이었을 테니까.




학원 시험지의 우측 상단마다 담당 과목 선생님이 채점하고 사인을 기재하는 칸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펜을 종이 위에서 미끄러뜨리듯 한 번의 필치로 유려하게 흘려 쓰는 다른 선생님들의 사인과 달리 함의 사인은 지나칠 만큼 단순하고 투박했다. 자신의 성인 함을 한자로 또렷하게 적는 것. 다 함(咸). 그게 함의 사인이었다. 심지어 입 구(口) 부수를 쓸 때조차 오른쪽 모서리를 굴리지 않고 네 개의 직선을 각각 따로 그어 네 개의 직각을 정직하게 만드는 모양으로 사인을 했다. 함의 사인을 따라 쓸 때면 연필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한붓그리기로 끝나지 않고 열 번의 획을 그어야 완성되는 한자는 단단하게 무장한 함의 외면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덧 함의 나이를 한참 지나온 나는 그때 함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였는지 알고 있다. 열여섯의 중학생에게 그는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까마득한 어른인 양 비쳤지만 내가 직접 겪어본 이십 대는 몸만 조금 더 자란 어린이에 불과했다. 끝없는 불안의 격랑 속을 통과해오는 동안 나는 종종 함을 떠올렸다. 내가 미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정의 해구에 이미 도달해본 사람. 때로는 그곳에서 슬픔을 길어 올려 쓰라린 상처를 반추하던 무력한 사람. 하지만 애써 고뇌를 감춘 무표정으로 학생들 앞에 섰던 성숙한 사람. 나는 감히 주제도 모르고 함 함 하며 불렀지만 함은 절대 함부로 불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함은 분명 내가 자신의 글을 볼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기꺼이 내게 비밀일기의 한 페이지를 펼쳐 주었다. 아마 사람들은 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간다고 납작하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함은 그저 내가 가만한 위로를 받길 바라지 않았을까. 늘 짓궂게 기어오르던 소년의 상심을 목격했을 때 다른 이들처럼 조급하게 이유를 캐물으며 고치려 들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 준 사람이니까. 내가 먼저 입을 떼어 손을 내밀었을 때 함은 자신이 알고 있던 최선의 방식으로 용감하게 위로의 길을 열어주려 했을 뿐이었다. 


그때의 위로가 나를 다시 살게 할 힘을 줬다는 걸 함은 알고 있을까. 단단한 표정 아래에 부서진 마음을 숨긴 채 천둥벌거숭이들의 농지거리를 받아주고 철 모르는 나에게까지 마음을 다해주었던 함. 그는 ‘다 함(咸)’의 곧은 외양보다도 마음을 모두 들인다는 의미의 ‘다함’이라는 소릿값을 더 닮은 다정한 선생님이었다. 부디 속세에서든 절에서든 작은 희망을 찾고 오늘의 하루에 마음을 다하고 있기를. 진심으로 그리운 마음을 모두 들여 바라고 쓴다. 나의 함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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