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10박 12일- 직장인 혼자 여행
추석 연휴에 과감히 연가를 붙여서 스페인으로 10박 12일 홀로 여행을 떠났다. 스페인을 한 바퀴 크게 도는 일정이었는데 커다란 캐리어는 낑낑 거리며 갖고 다닐 자신이 없었던지라 '기내용 캐리어'에 호기롭게 10일 치 짐을 넣었다. 어차피 스페인은 여름 날씨니 얇은 옷만 몇 개 챙기면 되었다. 그런데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이건 아니라는 걸. 결국 귀국할 때 캐리어를 하나 더 사서 두 개를 끌고 오게 될 줄이야.
스페인으로 가는 일정은 간단했다. 비행기를 두 번만 갈아타면 바르셀로나 도착이었다. 인천에서 상하이, 상하이에서 파리, 파리에서 바르셀로나. 내 짧은 인생 동안 경유 2번은 처음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까짓 거, 또 타면 되지!!
출발 당일, 인천공항에서 상하이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앉아있는데 갑자기 중국 여자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미안하지만 1인당 기내에 들고 갈 수 있는 짐이 제한되어있어서 그런데, 혹시 내 짐 하나를 들고 타 줄 수 있니?"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는데 흘끗 보니 면세점에서 산 듯한 아주 큰 쇼핑백을 두세 개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쇼핑백이 아니라 안에 바위가 들어있을 듯한 무게와 크기에 흠칫 놀라긴 했지만 그녀의 다른 친구들도 짐이 한가득이었다.
"그래, 알겠어~"
어려운 부탁은 아닌 것 같아서 들어주었다. 그녀는 버블티 하나를 사 오더니 고맙다고 전해줬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니 그 짐이 마약일 수도 있는데 함부로 그렇게 들어줬냐면서 깜짝 놀라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상하이행 비행기에서는 옆에 앉아있는 남자가 청바지에 콜라를 튀긴 것 말고는 별 일이 없었다. 상하이 공항에 내리니 여행객들은 바로 지문등록을 해야 돼서 긴 줄을 기다려야 했고, 환승구역을 확인했는데도 다른 곳으로 가버려 허둥지둥 공항을 왔다갔다거렸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하필 중간에 끼인 자리였다. 중국인들 사이에 끼여서 12시간 가량을 비행하였다.
아- 옆자리 승객운은 지지리도 없었다. 멋진 남자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매너 없는 사람을 양 옆에 둘 줄이야. 왼쪽에서는 아주머니가 계속 부스럭부스럭 움직이며 내 어깨와 팔을 툭툭 쳤다. 단순히 스치는 게 아니라 툭! 툭! 치고 꾸욱- 누르고 최악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치는데 인내심이 뚝하고 끊어지는 줄 알았다.
내 오른쪽 편에는 그나마 조용한 여자가 타고 있었는데 평범하지는 않았다. 내 발에 뭐가 부딪친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 앞에 꽂힌 책이 전부 떨어져서 내 자리를 침범하고 있었다. 게다가 불이 다 꺼진 비행기 안에서 내 뒤에 앉은 중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는 영어로 계속 대화하는데 너무 시끄러웠다. 다들 잔다고 조용한데 굳이 저렇게 시끄럽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 이야기를 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 자유는 사회 속 매너와 상식을 지킬 때 존중받을 수 있다. 조용한 영화관 안에서 시끄럽게 친구와 대화하는 건 그들의 자유가 아니라 비매너인 행동인 것처럼.
이 와중에 기내식 '비프’와 ‘생선' 중에 고른 '비프'는 엎친 데 덮친 격 한껏 치솟은 짜증 수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비프’는 짜보이는 중국식 소스 범벅의 면 요리였고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생선은 비릴 것 같아서 선택하지 않았는데, 그건 바로 맛있어 보이는 장어덮밥이었다. 역시 인생은 요지경,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
너무나도 험난한 비행 끝에 내릴 때가 다 되니, 내 왼쪽 아주머니는 이제 기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두 팔을 펼쳤다가(당연히 내 쪽으로 오른팔이 날아왔다) 다시 합장하듯이 두 손을 모았다가 팔을 위로 올렸다가 본인만의 비행기 착륙 의식을 열심히 보여주셨다.
아, 그래도 이제 파리에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만 타면 끝이다. 하하하
그렇게 전체 총 16시간의 비행 후 무사히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캐리어를 찾았는데, 아 이런. 이때까지 험난한 여정을 잘 견뎌왔던 내 마음에 기어코 상처가 생기고야 말았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새로 산 귀여운 라이언 네임택을 누군가 훔쳐가버렸다! 그렇게 쉽게 빠질 것처럼 안 보였는데 이건 분명히 너무나도 귀엽게 생긴 라이언을 누가 훔쳐간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여긴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스페인! 도난에 대한 걱정을 공항에서부터 품고 그렇게 스페인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