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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밈 Aug 28. 2019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내 월급은 소중해

내일이 깜깜해도 오늘은 지나간다

오늘도 일하다가 또 한 번 느꼈다. 아 역시, 이곳은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다른 회사도 비슷하다면 비슷하겠지만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는 것 같다. 국민들을 위해서 제도를 매년 개선한다고는 하지만, 진짜 국민들을 위해서 바꾸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의아한 점이 많다.


이건 그냥 윗사람들의 생색내기 포퓰리즘 정책 아닌가? 정부에서는 단순히 이렇게 해라고 법만 바꾸면 되겠지만 그 법이 일선 직원들과 국민들에게 미치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은? 우리 실무진이 다 감당해내야 한다. 제도가 개선되어 국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우리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즐겁게 일하겠지만, 실무에서 느끼는 제도의 개선 방향과 윗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생각하는 것과의 간극은 너무 크다. 법이 갑자기 일부 바뀌면 일선에서는 개선 취지와 다르게 부정적인 점들을 먼저 느낄 때가 많다. 당장 그 제도를 집행해야 하면서도 국민들에게 바뀐 취지를 설명하기가 곤란하고 동기부여도 사라진다.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체감도 못하겠고, 대부분 실무진의 일만 몇 배로 더 늘어나고 바뀐 제도에 대하여 묻는 민원 전화가 하루에도 수백 통이 걸려와 실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고 전화만 받다가 하루가 다 가버린다.


국민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니, 법을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러게요. 그건 국회의원이나 정부에 따지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내가 가서 따지고 싶다. 위에서는 좋다고 바꾼 제도 하나가 아래에는 큰 파장을 불러와 불편함, 민원, 비효율성, 업무 마비 등 대혼란만 일으킨다.




매번 퇴사를 굳게 다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또 출근하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매일 노래를 부르지만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이 조그만 월급이 소중해서, 그나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연차가 소중해서이다. 적어도 내가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쉬고 싶은 날 마음껏 쉴 수 있으니까.


지금 나는 생활비를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결혼을 위한 자금을 먼저 모아야 한다.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매달 돈을 벌고 모아야만 한다. 작은 월급을 티끌처럼 모으고 모아 4~5억 원이나 하는 집을 사야 하는데 집값은 또 왜 이렇게 비싼지.


은행 대출을 받게 되면 내 모든 월급이 은행으로 들어가 이 아름다운 지금 시간을 모두 집에 저당 잡혀 옴짝달싹 꼼짝도 못 하고 집 안에만 갇혀있을 것 같다. 전세로 들어간다고 해도 2억 이상 필요하니 은행 대출이 조금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원룸에 자취하듯 신혼집을 차리기도 싫다.


밖에는 온 동네에 아파트가 우뚝 솟아 산을 이루고 있고, 벌집처럼 칸칸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왜 내가 살 수 있는 곳은 저 많은 집들 속에 단 한 칸도 없을까? 돈도 없고 신혼이면 눈을 낮춰 단칸방이라고 얻어서 분수에 맞게 살면 된다고? 어디 본인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말해보시지. 누구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쉽게 쉽게 인생의 퀘스트를 깨나가는데 나는 평범한 아파트에 들어가 독립하고 싶다는 소소한 꿈도 사치인 것인가? 과연 나의 분수는 누가 정해준 분수인 건지.


요즘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해서 문제라고? 이미 경제 호황기에 부동산, 주식 등을 잔뜩 불려 나가 기득권을 움켜쥔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쯧쯧 혀 차는 소리는 나를 분노하게 한다. 이렇게 비싼 집에서 어떻게 사회초년생인 신혼부부들이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지?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꾸역꾸역 살림을 차리고 아기를 낳고 살며 흙수저를 대물림해야 하나? 아니면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이 소중한 시간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일만 죽어라 하며, 부부가 잘 때밖에 볼 수 없는 뜻밖의 룸메이트 생활을 해야 하나?


결국은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업무 만족도를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는 것만이 지금 최선의 희망이다. 당장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이직에 성공하지도 않은 지금, 공백기는 너무 두렵게 느껴진다.


매달 나오는 작은 월급이 너무 소중해서 어떻게 해서든 한 발은 한쪽 절벽에 걸쳐두고 다른 발을 건너편 절벽 쪽으로 뻗어 수천 미터 낭떠러지 허공을 건너가야 한다. 반대편 쪽으로 건너가는 것을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더 간절함을 가지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직에 성공하지 못하면 결국 낭떠러지뿐, 더 잃을 것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뭣도 모르고 비난의 소리를 지껄일 시간에 청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진짜 현실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내일이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두렵지만 오늘은 결국 지나갔다. 내일도 그렇게 지나가겠지. 안주하지 말고 간절함을 가지고 노력하자. 그놈의 윗사람들이 부르짖는 노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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