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으로 남은 해변의 만찬

스페인 10박 12일- 직장인 혼자 여행

by 미니밈

|프리힐리아나-네르하 1박 2일


그라나다에서 만난 동행자들과 차를 렌트하여 프리힐리아나로 이동하였다. 장롱 면허인 나에게 그들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유럽에서 드라이브라니! 우후훗!


우리가 향한 프리힐리아나는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에 있을 것만 같은 하얀색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인생 사진을 건지겠다 다짐하고 갔건만 그리스 바다에서 갓 건진 오징어 몰골 사진을 몇 장 건질 수 있었다. 동행자들이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 운 좋게도 더욱더 선명한 오징어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그렇게 동행자들과 마을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다가 다음 도시인 네르하로 이동하였다. 네르하는 절벽에 자리 잡아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고 있었다. 때마침 날씨가 흐렸고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데 여기가 유럽의 발코니인지 동해 베란다인지 헷갈렸다. 음, 그래도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니 속이 뻥 뚫리는 경치였다.



동행자들과 야외 테이블에서 타파스와 끌라라를 시켜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곧 그들은 세비야로 떠났고 나는 네르하에 혼자 남아 하루를 머물렀다. 그리고 또 하나 동행자들과 같이 떠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날 하루의 모든 운이었다. 네르하에서의 나의 운은, 그들과 웃으며 끌라라를 마시던 순간, 딱 거기까지였다.





그동안 타파스로만 끼니를 때우는 바람에 혼자서 성공적인 저녁을 먹기 위하여 네르하 해변의 맛집을 구글맵으로 검색해보았다. 해변 앞이니 조금 비싸긴 하겠지만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나의 배를 가장 비싸고 기름진 것으로 채울 요량으로 가격 따윈 상관하지 않고 평점이 높은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처음엔 좋았지


그곳에서 애피타이저 하나와 메인 요리 하나를 시켰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불그스레 변하는 하늘과 푸른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식당에서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니 흐뭇하였다. 곧 애피타이저로 크로켓 7개가 담긴 요리가 나왔다. 처음 한 두 개는 괜찮았는데 너무너무 짜서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메인 요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렇게 장장 1시간을 기다리게 될 줄이야! 내가 처음 식당에 들어갔을 때는 두세 테이블 밖에 차지 않았는데 이제는 서양인들로(심지어 다들 가족과 함께 여럿이서)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진 뒤라 모든 곳이 깜깜하였고 바다는 보이지도 않았다. 서양인 가족만 있는 곳에서 아시아인은 나 밖에 없었다. 그것도 혼자서 테이블을 1시간 동안 지키고 있으려니 민망하기도 하였고 메인 요리가 이렇게까지 늦게 나오는 것에 화가 났다.


당장 일어나서 주문을 받은 서버에게 찾아가 아직까지 메인 요리가 나오지 않았는데 도대체 언제 나오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 서버는 아주 태연하게 “네가 애피타이저를 다 안 먹어서 그렇잖아. 그럼 이제 메인 요리 줄게”하고 말했다.


아? 이 무슨 어이없는 대답이지. 1시간 동안 애피타이저 먹는 사람이 어딨다고, 내가 수저를 놓고 있으면 다 먹었냐고 메인 요리 줄까라고 물어나 보든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심지어 1시간 동안 메인 요리가 안나와서 그 짜디 짠 크로켓을 그래도 꾸역꾸역 먹고 있었는데! 내가 한국인이어서 여기 식당 문화를 이해 못하는 것인가? 한국 식당이었으면 손님들의 동향을 지켜본 뒤, 바로바로 다음 요리를 서빙했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내가 띵동 버튼을 눌렀겠지. 아니지, 원래 주문한 음식은 완성되면 그때그때 알아서 나오잖아?!


보통 유럽의 홀 서버들은 자신들만의 프라이드가 있어 손 들어도 바로바로 오지 않고 그들 나름의 규칙과 질서에 맞게 일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손님을 방치해놓는 것이야말로 그렇게 프라이드 있다던 유러피언 식당 서버의 진정한 모습이란 말인가?


화가 부글부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테이블에 앉았다. 크로켓도 다 못 먹었는데 메인 요리라도 배부르게 먹어야지! 이제라도 준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였다.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휴양지에 가족들과 놀러 왔으니 얼마나 좋을까. 거기에 음식이 바로바로 나오기까지 하니!


그 서버는 메인 요리를 가져가 주며 맛있게 먹으라고 약 올리듯 말하였다. 아니, 저기요! 그런데 이게 정녕 내가 1시간 넘게 기다려서 받은 요리인가요?! 조그만 칵테일 새우 몇 마리가 카레 국물에 몸을 젂신채 "짜잔, 나를 기다렸니?"하고 인사하는 꼴이었다. 오늘은 나만을 위한 만찬을 즐기려고 했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맛도 너무...


울며 겨자 먹기로 새우 몇 마리를 먹고 계산을 요청하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고작 크로켓 몇 개와 칵테일 새우 몇 마리를 먹은 거에 비해서 거금이 계산되었다. 5만 원 이상은 했던 것 같다. 잔돈이 없어 지폐를 건네고 거스름돈 가져다 주기를 한참을 기다렸지만 또 함흥차사였다. 서버들이 다들 바빠 보여 따지지도 않고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팁을 전혀 주고 싶지 않았는데 설마 팁이라고 생각하고 주지 않은 것일까? 체감상 이 식당에서 10만 원은 떼인 기분이었다. 너무 기분이 나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로 구글맵에 1점짜리 리뷰를 남겨주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밀린 빨래나 하자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하고 애써 위로를 해보려고 했지만 오늘 혼자 있던 순간들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다른 친구가 있었으면 같이 식당에 있는 힘껏 항의하고 또 다른 맛있는 걸 먹으러 갔거나 술 한잔 하러 갔을 텐데. 이미 밤이 내린 낯선 곳에서 나는 빨래만 돌리고 있었다.


1시간 후 빨래가 다 되어 세탁기를 열어보니 건조가 되어있지 않았다. 스페인어만 적혀 있는 세탁기 버튼 때문에 구글 번역까지 돌려가며 건조 기능 버튼을 눌렀는데, 아니 다시 세탁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1시간 넘게 빨래가 다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다시 세탁기가 처음부터 돌아가는 바람에 또다시 정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TV로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없고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다 그렇게 밤 12시가 넘어서야 빨래를 고이 널고 잠에 들 수 있었다. 누군가 있었으면 이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실소를 하며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혼자라서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마다 외로움은 공허한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그 날을 다시 떠올려보면 단순히 가격이 비싼데 맛없는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 식당의 서버가 나를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나빴다. 혼자 온 아시아인이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만약 그 서버에게 찾아가 메인 요리를 왜 안 주냐고 묻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나를 앉혀 두게 할 셈이었던가.


그 사실이 서글펐다. 낯선 곳에서 의지할 사람 한 명 없이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도대체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모르겠는 사실이. 차라리 숙소에서 컵라면 하나 끓여 먹는 게 더 최고의 만찬이 될 뻔하였다. 그 날 네르하에서의 밤은 밥을 배부르게 먹지 못하여 속상한 어느 오징어의 한탄으로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