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이 +1 되었습니다
친구를 만났다가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이 두어 명 앉아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내리고 혼자 남았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보름달이 크게 뜬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버스는 손님 한 명만 태우고서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창밖을 바라보며 가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1%밖에 남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노래를 껐다. 이어폰을 빼자 라디오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언제 라디오를 들어봤더라.
‘나의 취향이 남들보다 더 근사하고 세련되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남들의 취향을 깎아내리고 폄하하곤 하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이 책 좋더라~”하는 친구의 말에 “아~ 나는 그 책 별로던데.”하고 말하는 거죠. 다른 이의 말을 부정함으로써 내가 좀 더 나은, 지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거죠.
그런데 남들의 취향을 부정하며 깎아내릴 필요 없이 그냥 서로가 좋아하는 것만 말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어요.’
뭐, 이런 내용이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인지, 책의 한 구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와 닿았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의 취향을 쉽게 부정하고 나의 이야기를 했을지 모른다.
최근에도 엄마가 “어? 저 식당 괜찮던데~’하는 말에 ‘아니야, 저기 진짜 별로야.’ 하고 툭 내뱉었었다. 그땐 당연한 사실을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가 듣기에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상대방의 ‘NO’ 한 마디에 자신의 입맛과 취향이 깎아내려진 기분을 느낄 수 있겠구나 혹은 면박받았다거나 무시당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구나. 물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 같았지만.
그냥 그때, ‘아, 그랬어? 나는 다른 식당 OO이 더 맛있는 거 같아.’하고 말해도 됐었는데. 그러면 엄마의 취향도 존중하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서 대화가 촉촉하게 마무리되었을 거다. 라디오에서 말한 것처럼 충분히 아름다운 대화로.
“난 그거 별로던데, 싫던데. 야, 뭘 그런 걸 좋아하냐?” 이런 말이 의도치 않게 툭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과 더 부드러운 대화를 이어가려면 굳이 상대방의 취향에 대해 ‘NO’라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예스맨이 되자는 말이 아니라 굳이 상대방의 취향을 비난하듯이 폄하하지 말고, 그건 그대로 인정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게 라디오의 요지였다.
오늘 친구가 자신이 요즘 관심 있어하는 새로운 취미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처음 듣는 취미들에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모르게 툭툭 말을 내뱉은 건 아닌지.
라디오에서는 어느새 말소리가 멈추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버스에서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 뭔가 따뜻한 것을 또 하나 깨닫게 되었다. 좋은 말을 하나 더함으로써 앞으로의 내가 더 나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