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밈 Sep 18. 2019

13. 소비의 굴레 -명품 편

우리에겐 한정된 시간과 돈이 있다

올해는 꼭 엄마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어버이날과 생신 때마다 용돈과 꽃 그리고 케이크가 전부였지, 제대로 된 선물 같은 선물을 해드린 적이 거의 없었다.


각종 약봉지와 물병, 차키, 화장품 파우치, 지갑 등등 여러 물건을 낡은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시는 엄마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나는 명품백에 관심이 없지만 엄마에게는 이왕이면 아주 좋은 걸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싼지! 잠깐의 설렘이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계신 옆 직원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명품백은 최소한 3백만 원이 있어야 된다며 나보고도 결혼하기 전에 하나 사라고 펄쩍 뛰셨다.


"결혼 안 했을 때 사고 싶은 거 다 사. 결혼하면 못 사~"

"그래, 명품백 이런 거 지금 사야 돼. 결혼해서 아기 키우고 하면 돈 들어갈 데가 많아서 못 사~"




명품백. 웬만한 여자들은 다 좋아한다는 명품백. 그런데 나는 명품백에 관심이 없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몇몇은 구찌, 프라다, 입생로랑 등에서 산 명품백을 들고 다닌다. 돈을 열심히 모아서 샀을 수도 있고 선물로 받았거나 능력이 좋아 가뿐히 샀을 수도 있다. 그 친구들을 보면 '아, 그래. 이 정도 나이 먹었으면 명품백 하나 가지고 다녀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건 결국 타인의 욕망을 보고 나의 욕망에 억지로 불을 지핀 것일 뿐 온전한 내 욕구가 아니다.


가방은 그냥 물건을 담는 주머니잖아. 남자들은 가방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는데, 여자들도 짐을 줄이면 아예 가방이 필요 없지 않을까? 물건을 담기 위해서라면 그냥 편하게 에코백 들고 다니면 되지. 격식 차려야 되는 자리에는 괜찮은 중저가 브랜드에서 산 예쁜 핸드백을 가지고 가면 안 되나? 꼭 수백만 원대의 명품백을 사야만 할까?


명품은 그 자체로 품질이 엄청 좋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고가 마케팅 제품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 해도 그 가치보다 몇 십배나 비싼 가격을 붙여 팔아 이익을 챙기는 기업의 상품일 뿐이다. 100만 원 가치가 있는 제품을 명품 브랜드를 입혀 1,000만 원에 파는 거다. 그래도 사람들은 명품이라고 사니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천만 원짜리도 나중엔 똑같이 닳고 닳는다.


특히, 남의 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에서는 명품이 잘 팔린다. 그래서 내가 더더욱 명품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난 실제로는 가질 필요가 없는데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굳이 명품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물건을 사다니. 마치 나의 욕망을 가장하여 타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느낌이다. 내 연봉이 1억이 넘는다고 해도 그 돈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고 싶다. 안 들고 다니면 그만일 뿐인 명품백이 아니라.




비싼 외제차, 비싼 명품 가방, 명품 시계, 고급 브랜드 아파트. 너무나도 부유하여 명품만 구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명품을 쉽게 살 수 있으니 분명 행복할 것이다. 싫증 나면 다른 것을 사면 되고 쉽게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명품이 행복을 주는 걸까? 그 행복은 얼마나 지속될까? 행복이 지속되지 않으면 얼마나 자주 명품을 사야 할까?


사람에겐 물건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은 인생을 물건으로 채울 수 없으며 직접 살아가야 한다. 읽다, 일하다, 운동하다 등등 어떠한 행동을 하는 즉, ‘동사’의 형태만이 사람을 주체적으로 움직이게 하며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명사로서 존재하는 단순한 물건은 삶의 한편에 놓여 인생을 풍요롭게 꾸며줄 뿐, 진짜 인생은 누구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고급 아파트에 살아도 고급 아파트 자체가 주는 행복감보다 그 아파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놀이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쾌적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게 아닐까? 샤넬, 구찌, 에르메스 같은 명품백을 사도 그 가방은 안 들고 다니면 그만이다. 명품 가방도 그 자체로 주는 기쁨은 순간일 뿐, 그 가방을 들고서 누구와 어디로 가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엄마에게 명품백을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엄마가 훗날 생의 마지막 날 침대에 누워 지난날을 추억하실 때, 과연 그 가방을 떠올리실까? 내 일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소중한 추억을 하나하나 더듬는 순간에 명품 가방을 받았던 순간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까?





그래서 엄마에게 명품 가방 대신 딸과 함께하는 쿠알라룸푸르 여행을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모녀 둘이서만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투닥투닥 싸울지 하하호호 즐겁게 보내고 올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길지 않은 인생,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건 보석, 외제차, 명품 시계 이런 것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추억을 얼마나 쌓느냐’인 것 같다. 거기에 우리는 한정된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뭐,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은 원하는 거 다 하고 살면 되니 굳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항상 짐을 많이 들고 다니시는 엄마에게 좋은 가방을 선물하여 그 가방을 들고 같이 또 알콩달콩 여행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같이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많이 선물해드릴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12. 버스 안 우연히 라디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