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만 가면 고등학생 때의 지겨운 공부가 비로소 끝나고 핑크빛 사랑이 감도는 캠퍼스를 거닐며 행복한 미래가 펼쳐져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지옥 같은 공부를 견뎌내기 위한 환상이라는 것을. 대학생이 되어도 취업을 위하여 전공 공부에 몰두하고, 자격증 준비에 삼매경이다. 모두가 찬란한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또 다른 관문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럼, 취업을 하고 나면 이제 스스로 돈도 벌고 독립적인 어른으로서 제 구실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이 지긋지긋한 취준생 시절만 끝난다면 앞으로 내 인생은 탄탄대로이지 않을까?
하지만 처음 취업한 곳이 내 입맛에 딱 맞는 회사 일리도 만무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중고 신입의 신분으로 새롭게 이직 공부를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괜찮은 회사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곳에서는 단지 신입사원으로서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이지,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여기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인 상태.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며 회사생활에 적응하고 주어지는 업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아이러니하게 취준생 시절을 다시 그리워할 순간이 올만큼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도 힘들뿐더러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넷플릭스를 보며 잠드는 그 찰나의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여 운이 좋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결혼은 앞으로 행복한 삶만 펼쳐질 거라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평생을 함께하자는 그 약속은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 할, 서로를 더욱 배려하고 사랑하며 책임져야 할 결단의 순간이 된다.
그렇게 우리가 살면서 으레 거쳐나가는 삶의 과제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니 굳이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그 과제들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무리해서 힘쓸 필요도 없고, 하나 이루었다고 해서 기고만장하거나 다른 이들을 낮추어 볼 필요도 없다.그렇다고 허무주의에 빠질 필요도 시작도 전에 체념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이 삶의 한 순간이고 새로운 시작이니.
주저하지 말고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자. 오늘 실패를 맛보았어도 오늘 내 나이가 이만큼 먹었더라도. 내일은 또 다른 순간이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출발선이다. 현실의 벽이 크게 느껴지더라도 주저하지 말자. 머뭇거리면 내 삶을 내팽겨둔채로 인생의 끝만 바라보며 살게 된다.
내일도 오늘처럼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 안주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면 된다. 기쁠 때는 한없이 기뻐하고 슬플 때는 아낌없이 슬퍼하며.쉴 때는 아무 생각없이 푹 쉬고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주어진 모든 순간은 찰나이니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후회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내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가끔 아침에 그런 생각을 해.
혹시 70대의, 몸이 아프고 외로운 내가
제발 하루만 건강하고 빛나던 20대로
그때의 세상에서 그때의 몸과 마음으로
하루만 살게 해 주세요.
하루만 다시 그 시절을 살아보고 싶어요.
하고 간절히 기도해서
오늘은 20대로 눈 뜬 게 아닐까.
그러면 빨리 세수하러 가게 돼.
먼 훗날, 미래의 내가 간절히 바라고 바래서 지금의 나로 눈을 뜬 것이라면.나는 과연 오늘 어떻게 살까.
2020년 12월 31일.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옛날에 적어둔 글을 수정해본다. 오늘의 다짐을 끝으로 내일부터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야지.
2021년 1월 1일, 새해를 맞아 이 글을 읽는 몇 안 되는 분들에게도 모든 행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