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by sinwolrang

유월에 들어서자 봄의 잔상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잎새들은 더 이상 도도해져만 가는 태양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그에게 저항하 듯 진초록으로 반짝이며 둥근 구름처럼 짓푸른 그림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들 풀들은 하루에 한 뼘씩 키가 자라고, 마을 담장마다 물오른 줄장미 가시들이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을 날카롭게 할퀴며 뚝뚝 선혈처럼 검붉은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 '영혼의 미로'속에서 셈페레 서점 직원으로 등장하는 페르민이 문학의 정수라며 서점 손님에게 권하던 책인 '분노의 포도'를 기억 속에 묻어 두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게 되었고 얼음처럼 차가워진 마음과 생각에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때 마침 기억 속 흐릿한 안개 장막을 뚫고 올라온 책이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였다.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자신의 작품(영혼의 미로)에 '분노의 포도'를 언급한 장면에서 나는 그가 이 소설을 여러번 읽었고 더 나아가 이 소설과 작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막상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내 짐작대로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인간과 자연, 사물과 사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력..., 무엇보다 깊고 따뜻한 인간의 체온이 두 작품에서 동일하게 마주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ㅇ. 1939년 미국 대공황기, 시골 농부에서 한순간 땅을 빼앗기고 일자리를 찾아 증오와 절망의 거리를 떠도는 날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한 조드家 사람들

ㅇ. 이념과 법안에서만 존재하는 자유와 공정, 커피 주전자처럼 모순과 욕망으로 검게 끓어오르는 세상

ㅇ. 조드家에 불어닥친 위기와 고난 앞에 강철처럼 더 강해지는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

ㅇ. 절망과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의 숭고함을 포기하지 않았던 조드家 사람들

ㅇ.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파괴된 영혼, 하지만 황폐화된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희망과 생명의 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