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짧게 달아낸 처마 밑 한 뼘 그늘에 앉아 앞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다. 작열하는 여름 태양을 묵묵히 온몸으로 버티고 선 정원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따금 안개처럼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그 짧은 시간이 운명이 그들에게 허락한 자비의 전부로 보인다. 높아진 남중 고도에 거의 사라진 그들의 그림자는 이제 작은 새 한 마리도 품어주지 못한다. 그들의 운명을 비웃 듯 태양은 지평선을 넘고서도 집요하게 서쪽 하늘을 붉게 태우고 있다.
인광처럼 흐릿한 빛의 끝자락이 보랏빛 어둠에 쫓겨 뱀처럼 미끄러 지 듯 사라진다. 동쪽 하늘에서 신화처럼 별자리들이 깨어나고, 그제야 나무들은 달 빛을 휘감은 산들바람에 기대어 꿈인 듯 잠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생각한다. "오늘 나무는 또 어떤 지혜를 얻었을까? 난 쉰내 나는 땀이나 흘리고 있었는 걸~“
'문학의 바다에서 나를 만났다' 여섯 번째 작품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다. 익히 알고 있는 줄거리이기에 결말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느끼며 읽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노인과 소년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노인은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노인의 유일한 이웃 친구이자 어린 동업자인 소년은 이전엔 87일의 불운 끝에 다시 고기를 많이 잡은 적이 있다고 노인을 위로하지만 노인은 85번째 불운은 없을 거라며 희망을 안고 또다시 바다를 향해 조각배를 띄운다.
노인은 오랜 바다 생활을 통해 바다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경외심으로 대한다. 그는 바다를 믿었고 또한 자신을 믿었다.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가 낚시 바늘을 물게 되면서 물고기와 노인의 긴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치열한 사투 끝에 물고기를 잡게 되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 공격을 받아 어렵게 잡은 물고기는 커다란 꼬리와 하얀 등뼈에 붙어 있는 머리만 남게 된다.
여러 날 동안 돌아오지 않는 노인을 기다리던 소년은 아침에 일어나 돌아온 노인의 배를 발견한다. 단 한 번도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의심치 않았던 소년의 순수한 눈동자엔 눈물이 고이고,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울면서도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다.
노인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동안 자신에게 불운한 노인을 멀리하라던 사람들이 보란 듯이 엉엉 울면서 노인의 판잣집을 나와 마을로 내려간다.
이 작품에 거창한 수사와 해석을 더할 필요를 못 느낀다. 직관이 이끄는 대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소설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쩌면 난... , 마놀린처럼 누군가를 깊이 신뢰하고 사랑해 본 적은 없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