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콘래드
길고도 잔인했던 여름은 기어이 여름이었다.
나는 자연의 평등한 무자비와 무정한 복수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다. 어떻게 단언하냐고? 지금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희망 섞인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여름 숲이 산그늘에 덮인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날로 검어져 간다. 옥자 씨네 용마루를 반으로 가르며 머뭇머뭇 저물던 태양이, 어느덧 지붕을 빗겨 나 잡초로 뒤덮인 공터 사이 톱날처럼 보이는 지평선 아래로 도둑처럼 단호하게 사라진다.
밤하늘 별들이 서로의 영원한 간극 속에 고독한 빛을 내 듯, 조숙한 풀벌레 소리는 서로의 어둠 속에 독립적이며 고유하다. 자신의 존재를 바스러지도록 쥐어짜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운명에 헌정하고야 마는, 그래서 가을 풀벌레 소리는 차갑고 쓸쓸한 밤의 아리아 같다.
잿빛 밤하늘과 거대한 암흑 속에 빠진 숲의 경계선 위로 달이 떠오르면 성근 달그림자 위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래~, 이제 가을이다!" 마음은 저만치 가을 앞을 산다.
★9월 초입 신월랑에서... ★
'문학의 바다에서 나를 만났다.' 여덟 번째 작품은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이다. 폴란드 출신인 콘래드는 뒤늦게 20 대에 영어를 배웠지만 '어둠의 심장' 외 여러 편의 작품을 오직 영어로만 저술했다. '어둠의 심장'은 발표 초기 비평과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1960년대 미국 대학과 고등학교 수업에 사용되며, 수많은 비평과 반론, 재발론이 이어지면서 영문학 작품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어둠의 심장'을 읽고 난 후 왜, 대학 수업에 이 작품이 쓰였는지 어렴풋 짐작이 되었다. 영원히 정복될 수 없는 미지의 땅 같은 문장과 더불어,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 문명과 인종에 대한 사회적 이슈들이 옅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 밀림 깊숙이 들어와 있는 듯, 글의 행간들엔 불가해한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다. 높은 벽이 세워져 있는 비좁은 수로 같은 문장들과, 빛 하나 통과할 수 없는 질식할 듯 촘촘한 문장 사이에 야만인들의 흐릿한 불빛마저 없었다면, 내 사유와 인식의 배는 파선하거나 중도에 탐험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이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철학적이지도 일반적이지도 통속적이지도 않는 모호한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을 뱀처럼 흐르는 강을 따라 콘래드가 세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빈둥거리던 '찰리 말로'라는 선원이 친척의 도움으로 무역회사 증기선 선장이 되어 탐욕스러운 안개에 휩싸인 문명 제국의 상징인 템스강을 출발해 상아 중개상 '커츠'를 찾아 아프리카로 탐험을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국의 냉혹한 탐욕과 식민지 원시인들의 절망과 분노, 문명의 위선과 가식적 미소에 숨겨진 야만성. 주인공 말로는 야만인을 바라보며 먼 과거 자신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인간 동질성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운명이지. 내 운명이야! 인생이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그것은 하찮은 목적을 위해 무정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것일 뿐. 인생에서 우리가 기껏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너무 늦게 얻게 되는, 얼마간의 지식과 지울 수 없는 일련의 후회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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