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인간존재 이유는 불행과 고통 그 자체인가,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행복추구인가?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한 편의 재난영화를 보는 듯 페스트의 발생과 확산 그리고 소멸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오랑'이라는 해안 도시에 먹구름처럼 불어닥친 페스트라는 불행 앞에, 그 자비 없는 고통의 평등성에 힘 없이 죽음 너머로 안개처럼 사라진 사람들.
죽음과 상실의 고통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함과 역설적이게도 그 무력함에서 피어오른 인간애의 강한 연대로 페스트라는 가혹한 운명에 저항하며 그 부조리함에 맞서는 사람들.
아직은 인간의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린아이들 마저 고통으로 몸이 뒤틀린 채 두려움과 눈물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를 감지 못하고 죽어가는 그 부조리한 죽음을 우리는 무엇 때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결국 페스트에 걸려 손에 십자가를 쥐고 납빛으로 죽어가던 신의 대리자인 '파늘루' 신부는 어린아이들과 자신의 죽음 앞에 무엇을 보았을까? 끝없는 절망과 공허함을, 아니면 신이 약속한 구원과 소망의 빛을 보았을까! 그도 아니면 파괴와 정화의 자연순환으로 끝없이 돌아가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보았을까!
만약 페스트와 같은 재난적 불행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신은 신의 일을(불가해한), 우리는 우리의 일을(사랑하며 희망을 갖는) 묵묵히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게 이 책을 통해 카뮈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의사 리유를 비롯한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은 카뮈의 내면의 모습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난, 페스트에 몸이 뒤틀려 죽은 채 구덩이에 던져져 공허한 눈동자로 푸른 창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부글거리는 생석회가 부어지고 화석처럼 흐릿한 한 겹 흰 박막의 단면으로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혹~, 운 좋게 페스트에서 살아남았다면 아마 '코타르'처럼 페스트의 고통이 계속되기를, 그 가혹한 평등성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비틀린 맘으로 뒷골목을 어슬렁 거리고 있겠지! 나만 고통스러운 건 참을 수 없지만 모두가 고통스러운 건 참을 수도 있겠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슬쩍 마음에 끼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