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
글을 쓰는 것은 음식을 소화하는 것과 같다. 글을 매일 쓰겠다고 결심까지 했는데, 첫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포기한 날들이 많다. 몇 날 며칠을 글을 어떤 방식으로 쓸지, 내용 전개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 생각나는 대로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의 글쓰기는 첫 문장에 달렸다.
글쓰기가 왜 음식을 소화하는 것과 같냐면 결국 모든 음식은 소화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 마무리되는 문장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음식을 먹든 소화가 되는 것처럼 어떤 소재에 대해서 쓰든 마침표는 찍힌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글 쓰는 것 말고도 모든 일은 소화와 관련이 있겠다. 우리의 속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소화가 되는 것처럼, 물론 그 과정이 괴로울 수는 있다. 더부룩하거나, 체하거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가 진행되는 것처럼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은 흘러가고 어떤 일이든 마무리가 된다.
긴 시간을 살았다고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머리는 커져 왔다고 생각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최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매우 소화하기 힘든 음식을 연속으로 먹은 느낌이랄까. 결국 언젠가 소화는 전부 되겠지만 내 속은 매우 힘들어했다. 지금도 온전히 소화되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나의 선택으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 그런 과정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보냈고, 죽일 듯이 누군가를 미워했다가도 용서했다. 그러면서 생긴 잔여물들을 소화하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 적은 없다. 전부 내가 선택했고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간을 겪으면서 혼자만의 생각도 깊어졌다. 생각이 깊어지면서 점점 더 웅크리고 있다. 활짝 기지개를 켜야 하는데, 배가 아파서 몸을 더욱 숙이고 있는 사람처럼 웅크리고 있다.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혼자 생각하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나약해진 존재가 일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준비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 사실,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이 또한 솔직한 모습이니까. 그저 매일 침을 삼키듯이 기도를 한다. 그저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