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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 Nov 27. 2023

버스를 탄다는 것

삶을 대하는 자세

오늘은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이 기분을 느낀 것은 사뭇 오랜만인 듯하다. 기억 속에 없는 것을 보니 처음인 것 같기도 하고, 비가 오면서 날씨가 추워져 따뜻한 버스에 좀 더 앉아있고 싶은 마음에 든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언급되는 마음과 의식처럼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깊은 마음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한 때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이유는 목적지에 빠르게 가기 위함이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선호했다. 교통체증이 없는 지하철은 계산한 시간에 정확히 목적지로 데려다주었다.


언제부턴가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하루키의 책이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버스에서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종종 있는 일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자리가 있다면 버스 뒷바퀴가 있는 거의 끝 쪽 창가자리를 선호한다.) 창문을 엄지손가락 한 마디정도 열어놓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조금씩 맞으며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행복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집중해서 책을 읽더라도 목적지에 다다름을 느끼면 내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생겼는데 말이다. 이 기분은 나를 알 수 없는 더 큰 행복감에 빠지게 했다. 내 의식이 행복함을 인지하기도 전에 깊은 마음에서부터 말이다.

내일도 버스를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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