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진짜 얼굴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by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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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평범한 날이었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어느새 내게 가장 견디기 힘든 장소가 되어 있었다.

친구들의 신체적·언어적 폭력은 일상이 되었고, 그 끝에 남은 감정은 무기력과 공포뿐이었다.

도움은커녕 누군가에게 기대기조차 어려웠다.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머리로는 계산해야 했지만, 공포는 내 움직임을 옭아맸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초등학교 때의 경험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당하고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현실을 체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해 여름, 평범한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걸어오던 길,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파란 하늘과 몽실한 구름, 태양의 열기 때문에 이마에 땀이 배었지만 그날만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들어가자 부엌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와 냄새가 반겨주었다. 언제나 그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안도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 채 말이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너무 행복했다. 남들처럼 집에 엄마가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행복했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도, 요리하는 소리도, 모든 것이 따뜻하고 평안해서 항상 이대로만 살고 싶었다.

들어와서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소파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르며 쉬고 있었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에게 관심이 생겨서 부엌으로 향했다.

부침개를 굽고 있었고, 부엌에서 나는 부침개 냄새, 엄마가 있다는 안정감, 모든 것이 좋았다.

불 옆에서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며 불안했는지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집에 올 사람도, 택배도 없을 텐데 괜히 불안해졌다.

인터폰을 받자마자 나는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목소리, 떨리는 몸, 말이 안 나왔다.

혹시 하는 마음에 부엌 옆 작은 베란다를 통해서 창문을 열어 확인을 해야만 했다.


확인을 하자마자 다시 인터폰을 울리고 나는 그만하라고 끊어버렸다.

그리고 또 불안한 마음에 베란다에 가서 또 확인을 했다.

정신없는 행동에 엄마는 나에게 "무슨 일 있니?"라고 말했고, 나는 "아무 일도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왜?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을까?

도움을 청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잔인하고 비참했다.


나는 인터폰을 끊지 못한 채 집 앞 창문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내려간 건, 그 공포를 끝내고 싶다는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복도로 내려와 그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미친 듯이 반격했다. 그동안 당해온 수모와 폭력을 한꺼번에 되갚으려는 분노가 나를 지배했고, 나는 날것 그대로 행동했다. 머리카락이 잡혀 뜯기고 손톱자국이 남는 와중에도 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를 지켰다는 만족을 느꼈다.


처음으로 나를 지켰다는 것에 행복하고 만족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을 초래해도 말이다.

다음날 학교가 비상이 걸렸어도 그건 비상이 아닐 것이다.

왜냐만 초등학교 때처럼 덮을 것이니깐.

학교폭력을 덮어버리는 것은 누워서 죽 먹기나 다름없을 것이니깐 말이다.

간단하다.

1. 형식적인 사과를 한다.

2. 아이들끼리 장난이라고 치부한다.

3. 가해자 부모님의 직업과 재력으로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협박하면 된다.

4. 그리고 제일 잔인한 것은 학교교장과 담임선생님 그리고 기타 선생님들이 별 것도 아니라고 덮어버리면 된다.

5. 결론은 증거가 있어도 덮어지고, 없어도 덮어진다.

제일 비참한 것은 부모가 관심이 없으면 피해자는 학교에서 학교생활을 할 때 매장당해 버린다.

이것이 진짜 학교폭력의 진짜 얼굴이다.

그래서 가해자는 평범하게 잘 살지만, 피해자는 죽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피해자를 자살로 이끈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했다. 싸움 소리에 경비실과 이웃이 나왔고, 사건은 곧 부모님 귀에 들어갔다. 학교에서는 형식적인 절차로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다. 사과가 오갔고, ‘장난이었다’고 치부하며 덮으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가해자의 부모와 학교의 태도는 사건을 봉합하려는 데 급급했고, 증거가 있든 없든 결국 덮이는 풍경을 나는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의 외로움은 이곳에서 분명해졌다. 부모의 관심이 없을 때 피해자는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마치 매장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게 바로 학교폭력의 진짜 얼굴이었다.


사건 후에도 학교생활은 더 잔인해졌다. 겉으로는 선생님의 감시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 일진과 무리의 행동은 더 교묘해졌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폭력으로 응수했을 때,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잠시 얻었다. 하지만 그 힘은 공허한 승리였고, 진짜 해답은 아니었다. 교실 구석구석에 남은 상처와 수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쉬는 시간 화장실로 가다가 일진 무리 중 하나가 "재 얼굴 걸레로 닦으면 재미있겠다"라고 말했다. 잔혹한 말들 앞에서 나는 참지 않았다.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을 때, 주변의 침묵이 깨지는 걸 느꼈다. 그 순간부터 누군가가 나를 쉽게 보지 못하게 되었고, 선생님의 태도도 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권리 회복을 의미하진 않았다. 내가 얻은 것은 타인의 공포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와 존엄이었다.


결국 학교는 사건들을 덮었다. 공식적으로는 정리가 되었지만, 나는 그 표면 아래에 남아 있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가해자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고, 피해자의 상처는 시간 속으로 파묻히려 했다. 그 결과는 때로는 생을 포기하려는 최악의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사람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만드는 이유를 나는 목격했다. 그게 학교폭력의 가장 잔인한 얼굴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분노와 폭력은 나를 잠깐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진짜 회복은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학교를 떠난 뒤 찾아온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멈춤은 도망이 아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흔들리며 살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의 기억을 글로 꺼내어 정리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한다. 우리가 진짜로 마주해야 할 것은 ‘형식적 사과’가 아니라, 제도의 성찰과 공동체의 책임이다.


그날의 싸움과 그 후의 침묵은 나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안에 깊은 질문을 남겼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질문,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나를 지켜야 할까.”

그 물음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머물렀고,

결국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나 자신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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