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원 (2화): 루카,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

지질의 탄생, 세포막의 탄생, 세포의 탄생

by 이시온

저번 화에선 우주의 별먼지에서 시작된 원자들이 심해 열수구의 천연 에너지를 동력 삼아 유기물이 되어 스스로 복제하고 기능을 갖춘 RNA로 진화함으로써, 수많은 실험들이 증명함과 같이 신의 손길 없이도 물질이 생명으로 도약하는 압도적인 서사를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그 이상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이제 원시 바다는 스스로 복제하는 유기물들과 여러 다양한 아미노산, 단백질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원시 수프 상태가 된다. RNA는 라이보자임으로서 스스로를 복제하고 단백질 덩어리들은 그들의 효소로서 기능을 수행하며 자유로이 유영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들이 그 넓디넓은 바다에서 너무나도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수분출공이 유기물들을 가두어주고 품었다 한들, 분자 수준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공정처럼 뚝딱뚝딱 작동하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다로 나가는 순간, 공들여 만든 복제본과 소중한 영양소들은 허망하게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효율적인 생명 활동을 위해서는 '우리'를 가두고 '외부'와 격리할 울타리가 절실했다.

세포를 발견한 로버트 훅

세포(Cell)라는 이름은 1665년 로버트 훅이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코르크 마개가 왜 물에 뜨는지 궁금했던 로버트 훅은 현미경으로 코르크 마개의 작은 조각을 관찰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작은 미세한 공간들이 서로 나뉘어 마치 방을 형성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다. 훅은 이 모습을 본떠 Cell(뜻: 작은 방/감옥)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세포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왜 갑자기 로버트 훅과 세포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앞서 효율적인 생명 활동을 위해서는 ‘우리’를 가두고 ‘외부’와 격리할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했던 점을 기억하는가? 그렇다. 이제 세포막을 통해 안과 밖이 구분되는 세포의 등장이다.

가장 기본적인 지질의 형태인 지방산 (Fatty Acid)

다시 열수분출공, 이 공간에서는 또 다른 유기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CO2, CO, H2 같은 간단한 분자들이 금속 황화물(FeS, NiS 등) 촉매 표면에서 전자를 주고받으며 결합을 이루기 시작한다. 머리가 아픈가? 필자도 이렇게 말고는 어떻게 설명할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 단순히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탄소 원자끼리 달라붙으며 길고 기다란 꼬리를 형성한다. 이 꼬리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미끌미끌할뿐더러 물에 섞이지 않는 소수성이라는 것이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 기름 즉, 지질의 탄생이다. 이 꼬리 끝에는 머리가 씌워진다. 카복실산, 단순하게 말해서 이 머리는 물에 잘 달라붙는다. 그렇게 지질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지질인 fatty acid, 지방산이 탄생한다. 이 지방산은 머리는 친수성이고 긴 꼬리는 소수성이라는 특징을 타고난다. 그리고 이들이 세포막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친수성 머리와 소수성 꼬리를 가진 지질(Lipid)로 이루어진 세포막


지질(lipid)은 유연한 지방 분자들이다. 아까 말했다시피 지질은 물을 좋아하는 머리 부분과 물을 싫어하는 꼬리 부분을 동시에 가지는데, 이 독특한 성질 때문에 물속에서는 스스로 모여 얇은 막을 만든다. 일종의 자연스러운 화학적 자기 조립 현상이다. 이는 고등학교 실험실에서도 만들어볼 수 있다. 지질의 한 종류인 인지질(phospholipid)을 물에 넣고 흔들어 보면, 친수성(물과 잘 섞이는) 머리는 물 쪽을 향하고, 소수성(물과 잘 섞이지 않는) 꼬리는 서로를 향해 모이면서 이중층 막을 형성한다. 그러면 이중층의 양 끝에서 남게 되는 소수성 꼬리들은 어떻게 될까? 꼬리 부분끼리 서로 맞물리며 구조를 둥글게 말기 시작하고, 그 결과 내부와 외부가 구분된 구형 주머니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세포로 추정되는 구조, 리포솜(liposome)의 형성 과정이다. 바로 이 속이 텅 비어있는 원형 구조가 바로 리포솜처럼 원시 세포막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으로 강력히 추정된다.

리포솜 (출처: 나무위키)

이제 생명은 더 이상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세포막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소중한 설계도(RNA)를 보호하고, 내부의 화학반응을 더 효율적으로 농축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 (LUCA: Last Universal Common Acestor)

그렇게 마침내, 오랜 화학 진화와 자기 조립 과정을 거쳐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존재가 등장한다. 영어 이름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앞글자를 따서 LUCA(루카)라고 부르는 이 존재는, 오늘날 지구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만나게 되는 하나의 공통 출발점으로 생각된다. 루카는 우리가 상상하는 복잡한 생물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복제하고, 에너지를 이용하며, 유전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생명 시스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은 매우 크다. 세균, 고세균, 식물, 동물, 곰팡이, 그리고 우리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의 계통수가 한 점으로 수렴하는 지점이 바로 루카이기 때문이다. 물론 루카가 “첫 번째 생명체”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그 이전에도 여러 원시 생명 후보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후손을 남긴 생명들의 계보를 따라가면 모두가 결국 이 루카로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루카는 지구 생명의 긴 역사 속에서, “생명의 공통된 뿌리”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루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무엇일까?

루카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이자 생명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다만 루카의 화석이 발견된 적은 없고, 현재 존재하는 생명체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루카에 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생각보다 단순하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세균, 고세균, 진핵생물)가 공통적으로 보유한 유전자를 분석하면, 루카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렇게 공통된 유전자를 분석해 보았을 때, 과학자들은 루카가 고온 환경에서,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로, 화학적 기울기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환경은 어디일까? 그렇다. 바로 심해 열수분출공이다. 즉,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근원지는 신이 아닌 지구 내부 에너지에서 비롯된 열수분출공 쪽으로 점점 수렴하고 있다.




정리해 보자.

빅뱅(약 138억 년 전)으로 뿌려진 가벼운 원소들은 중력에 의해 별을 만들고, 별 내부와 초신성 폭발을 거치며 탄소, 산소, 철 같은 무거운 원소를 우주에 퍼뜨렸고, 그 잔해가 뭉쳐 약 46억 년 전 태양계와 지구가 형성되었다. 초기 지구는 뜨거운 마그마 행성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철, 니켈등 무거운 원소는 중력으로 인해 가라앉아 핵이 되고, 가벼운 원소들은 위로 떠올라 맨틀 지각이 된다. 화산 폭발로 터져 나온 수증기 및 가스로 대기가 만들어지고, 공기 중 수증기가 냉각하며 비가 되어 바다가 생겼다. 이런 원시 환경에서 번개 자외선 같은 에너지(밀러 실험)와 함께, 특히 심해 열수분출공에서는 CO2, H2 등이 광물 촉매(Fe-S 등) 위에서 반응하며 유기물 합성이 촉진되고, 알칼리성 분출수와 산성 바닷물이 만나 만드는 pH 차(양성자 기울기)는 천연 배터리가 되어 에너지원이 되었다. (로스트 시티 같은 알칼리 열수구들이 이를 강력히 입증한다) 동시에 포름알데하이드, 시안화수소 같은 단순 분자들로부터 리보스(ribose)와 피리미딘/퓨린이 만들어져 유전정보를 저장할 핵산(nucleic acid)이 갖춰진다. 이를 토대로 탄생한 RNA는 정보 저장과 자가복제가 가능한 촉매 기능(리보자임) 단계로 진화했으며, 오늘날 리보솜의 핵심 엔진이 RNA라는 사실은 그 흔적을 남긴다. 한편 지방산/인지질은 물속에서 스스로 이중층 막과 리포솜(liposome) 만들어 내용물을 가두는 울타리(세포막)를 제공해 내부에서 RNA와 효소(단백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반응들을 농축, 유지하게 했다. 이런 화학적 진화와 자기 조립이 이어진 끝에 후손을 남긴 계통의 공통 조상인 루카(LUCA)에 이르렀다. 루카는 화석으로, 또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남아 있진 않지만 현존 모든 생명체의 공통 유전자를 통해 고온, 무산소 환경에서 화학적 기울기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래서 생명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출발점은 초자연적 개입보다 심해 열수 환경 같은 지구의 에너지 시스템 쪽으로 점점 수렴한다.


다음은 이 루카가 어떻게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로 진화하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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