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령 (1)

낙태령 - 1부

by 이시온

“야, 저 새끼 잡아!”


밤비가 굵직하게 내리 꽂히는 새벽, 젖은 아스팔트 위를 구둣발이 거칠게 내리쳐 달린다. 좁디좁은 달동네 골목, 벽은 습기로 검게 젖어 있었고 곳곳에 버려진 비닐봉지가 경찰들의 발길질에 차여 이리저리 흩날린다. 고인 웅덩이에 구둣발이 빠질 때마다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고, 그 물은 금세 다시 흙탕이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골목 위로 늘어선 가로등들은 절반 이상이 꺼져 있었고, 켜져 있는 몇 개는 간헐적으로 껌뻑였다. 희뿌연 빛줄기가 비추는 곳마다 경찰들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골목을 꽉 채웠다. 그 빛은 비에 젖은 벽돌과 녹슨 대문을 어렴풋이 비추며 마치 도시의 숨겨진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려는 듯 일렁였다. 가장 앞에서 달리는 단속국 요원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은빛으로 번쩍이는 수갑을 흔들었다. 뒤이어 붙는 두 사람은 각각 검은 곤봉과 전기 테이저건을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들의 장비는 이미 오래도록 사용해 온 듯 손때와 상처가 가득 묻어 있었고, 가로등 빛에 번쩍이는 물방울이 그 표면을 따라 흘러내렸다.


휘-이이익!

호루라기가 찢어질 듯한 고음을 토해냈다.


순간, 잠들어 있던 골목의 창문들이 하나 둘 거세게 흔들렸다. 누군가는 커튼을 살짝 젖히고 내다보다가, 검은 제복의 남성들을 보곤, 곧바로 서둘러 덮어버렸다. 단속국의 발걸음이 닿는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깔아 숨겼다. 검은색 제복에 검은색 안면마스크까지 둘러쓴 그들은 마치 사람의 형체를 한 짐승 같았다. 어깨에는 은색 빛깔의 독수리 모양의 휘장이 침침한 가로등을 지날 때마다 번쩍였다. 그 휘장은 밤비와 불빛에 반사되어 묘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들의 구령이 골목을 뒤흔들고, 빗물은 마치 그 구령에 복종하듯 더 거세게 쏟아졌다. 좁은 계단과 비탈길,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까지 단속국의 구둣발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쫓는 그림자 하나 어느 여인의 축축이 젖은 원피스 자락이 골목 모퉁이로 사라졌다.


“야! 얼른 저 반대쪽으로 뛰어!”

선두에 선 경찰이 명령을 내리자 뒤따르던 단속국 요원 둘은 반사적으로 흩어졌다. 좁은 골목 사이, 빗물은 미친 듯이 튀었고, 그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분열하며 사냥개처럼 달려들었다.

“거기 멈춰!”


선두 경찰의 거친 외침은 벽에 부딪혀 울려 퍼져나가 달동네의 골목을 가득 메웠다. 그 목소리를 등에 지고 필사적으로 달리는 여인은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피스는 이미 젖어 마치 그녀의 도망을 붙잡아 늘어뜨리는 족쇄처럼 몸에 달라붙었다. 신발조차 없었다. 맨발의 발바닥이 진흙과 자갈 위를 찢기듯 달렸다. 돌조각이 박히고 피가 배어 나왔지만, 여인은 멈출 수 없었다. 굵직한 빗방울들이 그녀의 어깨와 머리를 두들겼다. 곧 차갑게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었고, 이내 물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턱 끝에서 똑똑 떨어졌다. 그 빗물은 피와 뒤섞여 땅바닥에 흡수되었고,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붉고 희미한 흔적을 남겼다.


그녀는 두 팔로 무언가를 소중히 껴안은 채로 달리고 있었다. 이미 늦을 대로 늦어버려 불룩해진 아랫배, 넉 달은 되어 보이는 생명이 그 안에 있었다. 그녀는 달리면서도 배를 감싸 쥔 팔에 힘을 더 꾸욱 주었다. 마치 아이가 그녀의 품속에서 떨어져 나갈까 두려운 듯, 세상 그 무엇보다 지켜야 할 전부인 듯.


단 몇 분 전, 아니 몇 초 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그들의 작은 집에 앉아 있었다. 가진 건 많지 않았지만, 그 안엔 있을 건 다 있었다. 작은 선반 위에 놓인 예쁜 그릇들, 손빨래로 매일 삶아낸 듯 보슬보슬한 이불, 자잘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오래된 라디오와 티브이, 그리고 몇 권의 책. 부유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서로의 웃음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어리석을 만큼 함부로 미래를 꿈꾸게 했다. 뱃속에서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 웃으며 밥을 먹을 내일, 작은 집에 아기 울음이 울려 퍼질 내일, 그 평범한 내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 저녁, 남편은 야식으로 라면 두 봉지를 끓였다. 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었기에, 그는 일부러 시내까지 나가 마트에서 라면을 사 왔다. 오랜만에 집안을 채운 매콤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참으로도 반가웠다. 코끝을 간질이는 그 향에 그녀의 얼굴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얼마 만의 라면일까,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얼른 와! 라면 다 됐어!”


남편의 목소리는 참으로 다정했고, 참으로 따뜻했다. 그 목소리만 들으면 세상의 그 어떤 불행도 닿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아무리 가진 게 없었어도, 이 사람과 라면 살 수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백 년을 약속했고, 그 약속은 빈 지갑보다도, 얇디얇은 이불보다도 훨씬 단단한 것이었다.


달그락, 작은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식탁에 앉았고, 곧이어 남편이 두 손으로 양은냄비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뚜껑이 덮인 냄비는 아직도 뜨겁게 달궈져 있었고, 구멍 난 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습기 섞인 라면 냄새가 좁은 방 안 가득 번졌다.


“짜잔!”

남편은 장난스럽게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뚜껑을 열어젖혔다. 순간 김이 확 치솟으며 안에 담긴 국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이게… 아니야?”


남편은 눈치를 보며 머쓱하게 웃었지만, 이내 걱정이 묻어나는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웃음 사이로 삐져나온 눈물을 닦았다. 라면은 흔히 ‘한강 라면’이라 불릴 만큼 국물이 가득했다. 양은냄비 가장자리가 넘칠 듯 찰랑거릴 정도로 물이 많아, 면은 국물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라면을 한 번도 끓여 본 적 없던 남편은 서툰 손길로 만든 한강 라면을 내밀었고, 그 모습은 그녀에겐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냐, 완전 맛있겠다. 그냥… 너무 행복해서 그랬어.”

그녀는 행복했다. 이 사람과 라면 미래를 꿈꿀 수 있었고, 가진 건 없어도 웃을 수 있었다. 남편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다행이네! 다음에 내가 또 사다가 끓여줄게!”

“ㅎㅎ 아냐, 나중에 사 오면 내가 끓여줄게.”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게 작은 전구 불빛 아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소를 건넸다. 양은냄비에서 올라온 뿌연 연기는 천장으로 피어올라 전구를 감쌌고, 흐려진 불빛은 방 안을 오히려 더 따스하게 채웠다. 잠시나마 세상에서 단절된 작은 섬 같았다.


띵동


갑작스러운 현관 벨 소리가 그 고요와 행복을 찢고 들어왔다. 짧지만 날카로운 그 소리는 그녀와 남편의 귓가를 파고들었고, 두 사람의 미소는 동시에 멎었다

.

“뭐야… 누구지, 이 시간에?”

남편은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조심히 일어났다. 식탁에 놓인 젓가락이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는 천천히 현관 앞으로 걸어가, 굳은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 차례 고요가 흐른 뒤, 남편은 다시 한번 외쳤다.

“누구…”


쾅!


문고리가 부서지는 괴성과 함께 현관문은 안쪽으로 폭발하듯 열려 젖혀졌다.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 올랐고,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집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곧이어 그녀의 남편을 덮쳤다. 그녀의 남편은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들이닥친 그림자를 밀쳐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상대는 한순간에 그를 제압했다. 남편의 등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숨이 턱 막히며 그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위로 올라탄 검은 그림자는 단숨에 무릎을 그의 머리 위로 내리꽂았다. 남편의 관자놀이가 바닥에 끼이듯 눌리며, 피가 쏠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으아아악!”


거친 숨이 목구멍에서 쥐어짜지듯 새어 나왔다. 버둥거리는 그의 손은 바닥을 긁으며 저항했지만, 묵직하게 깔린 무게와 무릎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얼어붙은 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숨이 짓눌린 채 끊어져 가는 소리, 마룻바닥을 긁는 손톱이 깔리는 소리.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방안을 전쟁터로 바꿔놓았다.


“가만히 있어 이 벌레 같은 새끼야”


그들 어깨 위, 젖은 비에 반쯤 가려져 있던 금속 휘장이 불빛을 받자 섬뜩한 광채를 토해냈다. 물방울은 휘장 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번쩍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피 묻은 칼날이 물기를 흘리는 듯한 모습이였다. 물방울 사이, 그 안에 새겨진 네 글자 “생명보호단속국.”


“선… 선영아 도망쳐!”


그렇게 그녀는 열린 뒷 창문을 넘어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내달리 시작했다.


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 그녀의 폐는 이미 물에 잠긴 듯 무겁고, 목구멍은 타들어가듯 아팠다. 하지만 멈추는 순간, 잡히는 순간이 곧 끝이라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망치처럼 내려 꽂히는 단속국의 구령, 곤봉이 허리에 철컥철컥 부딪히는 소리, 호루라기의 날카로운 비명. 그 모든 소리는 그녀의 등을 향해 꽂히는 창처럼 날아왔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2030년대의 대한민국, 양극화는 이미 심해질 대로 심해져, 마치 속부터 썩어버린 나무처럼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다. 부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졌고, 그들만의 닫힌 성벽 같은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넓은 대지 위에 세운 주상복합 단지, 전용 출입구와 보안 게이트로 둘러싸인 타운하우스, 고급 유치원과 국제학교가 밀집한 구역.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나라의 국민처럼 보였다.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서서히 밀려나갔다. 한때는 번화가였던 골목은 재개발에서 배제된 채 낡고 해진 공간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속으로 파고들었다. 버려진 공장 기숙사, 낡은 고시원, 지하철 굴착 흔적 위에 세운 불법 판잣집. 그곳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공간을 ‘바깥’이라고 불렀다. 도시의 빛이 미치지 않는 곳, 정책이 닿지 않는 곳, 기록조차 흐릿한 곳. 빛나는 도시 중심부와 썩어가는 변두리는 공존하고 있었지만, 그 간극은 이젠 더 이상 단순한 격차가 아니었다.


그렇게 갈라진 두 사회는 아주 다른 양상을 띠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낳지 않은 건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중산층, 기업을 운영하는 상류층, 전문직 여성들. 그들은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양육의 끝없는 희생을 거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희망’이 아니라 ‘위험’이었다. 부유층은 그 위험을 정확히 파악했고, 기꺼이 피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202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한국의 저출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회 전반을 흔드는 파문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기 전, 너무 많은 것들을 따져야 했다. 돈, 직장, 주거, 교육, 경쟁, 노후, 계급. ‘아이 하나 낳아 기른다’는 단순한 사실은 수십 개의 조건문으로 둘러싸였고, 그 조건문은 거의 언제나 부정으로 끝났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지금은 시기가 아니야. 우리 둘도 살기 빠듯해.’ 출산은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철저한 계산의 끝이었다. 그 계산식은 언제나 같은 답을 냈다. ‘낳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출산율은 곤두박질쳤다. 0.8, 0.7, 그리고 마침내 0.69. 세계 언론은 한국을 ‘사라질 나라’라고 불렀고, 학자들은 ‘국가 소멸’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고 꺼냈다. 하지만 이러한 부의 극단화는 아주 독특한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아이를 낳은 건 가난한 이들이었다. 피임을 배우지 못한 이들, 병원에 갈 돈조차 아까운 이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 그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사고에 가까웠다. 그들은 아이를 원해서 낳은 게 아니라, 막지 못해 낳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다양했다. 피임에 대한 교육은 턱없이 부족했다.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에선 성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처럼 여겨졌다. 그들에겐 진료비조차 사치였고, 산부인과는 ‘부자들이나 가는 곳’이었다. 아직도 불법이었던 낙태는 그 어디서도 받을 수 없었다. 설령 어찌저찌 불법적으로 받는 다 한들 그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비쌌다. 미래를 설계할 여유가 없던 이들은 지금 당장의 욕구에 휩쓸려 쉽게 임신했고, 젊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기 시작해 수많은 임신과 출산이 반복되었다. 결국, 그들의 아이들은 태어났다.


아이들은 태어났지만, 그 아이들은 그 누구도 원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달동네의 반지하에서, 곰팡이가 핀 벽지 아래에서, 버려진 공장 옆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좁디좁은 고시원 방에서 아이들은 태어났다. 그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환영 대신 무관심을, 축복 대신 한숨을 받았다. 이 아이들은 삶의 연장이 아니라 짐이었다. 이들이 태어난다는 건 한 가정이 무너지는 신호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실수는 반복되었다.


그들이 청소년이 되자 범죄율은 폭등하였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던 이들의 아이들, 그들이 갈 길은, 그들이 갈 수 있었던 길은 제한적이었다.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낡고 갇힌 공간, 철거와 재개발에서 늘 밀려난 달동네, 고립된 주거 단지 속에서 그들은 자라났다. 그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의 방식을 배우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어떻게든 이 악순환, 가난과 무식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돈을 쏟아부었다. 낡아빠진 동네 한가운데 학교를 새로 짓고, 벽이 금이 간 교실을 뜯어내며 최신식 전자칠판을 설치했다. 도서관과 체육관을 세우고, 골목마다 CCTV를 달아 치안을 강화했다. 수십억 원의 예산이 ‘교육 인프라 확대’라는 이름으로 투입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건물이 아니었다. 아무리 새 건물이 들어서고, 컴퓨터와 태블릿이 지급되어도, 그 앞에 앉은 아이들의 눈빛은 여전히 공허했다. 학습 의욕은커녕, 그들은 학교를 그저 또 다른 감옥쯤으로 여겼다. 또한 어디까지나 정부의 ‘발악’은 보여주기식이었다. 정치인들은 새로 지은 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언론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라 떠들어댔다.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될 수 없었다. 교실은 일찍이 아이들을 포기한 교사들의 체념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깊은 한숨 뒤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책 대신 서로의 주먹과 욕설을 먼저 배웠다. 선생이 아이들을 제압하지 못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더욱 잦아졌다. 체육관은 아이들의 싸움터가 되었고, 도서관의 책은 창문을 뚫고 창 밖으로 던졌다. 사태의 심각정을 느낀 정부는 본격적으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추경을 통해 부족한 예산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교육적 투자 목적의 돈은 쏟아졌지만, 의지는 채워지지 않았다. 정부의 발악은 잠깐의 미봉책일 뿐,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수업은 종종 시작조차 되지 않았고, 교사는 교단 위에 앉아 서류만 넘기거나 수업을 포기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결국 학교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범죄의 예비 연습장이 되어갔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 하교해 집에 돌아간다 한들 집엔 늘 술에 취한 아버지와 탈진한 어머니만 있을 뿐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부모 밑에서, 집은 안식처가 아닌 전쟁터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남은 건 거리뿐이었다. 거리에서 그들은 또래 아이들과 무리를 지었고, 그 무리는 곧 생존의 방패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이름들은 범죄율의 통계 속 숫자로 천천히 바뀌어 나갔다. 절도, 폭행, 무면허 운전. 언론은 그들을 ‘방치된 세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예산을 퍼붓던 정치인들은 그들을 ‘사회적 비용’이라 규정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일동 같은 목소리와 같은 입장을 내었다. ‘내가 원해서 낳은 게 아니야. 나에겐 그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어.’ 그들의 목소리는 절망에 가까웠다. 아이를 막을 방법도, 아이를 키울 방법도 주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는 차갑게 대답했다.


“아이를 낳은 건 너잖아. 책임져라.”

그 말은 곧 심판이었다. 가난은 죄가 되었고, 아이는 형벌이 되었다.


2030년대 중반, 대한민국 국회는 오랜 논란 끝에 마침내 낙태권을 법안으로 상정했다. 그간 뜨겁게 이어졌던 찬반 논쟁은 겉보기에는 ‘여성의 권리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귀결되었지만, 실제 법안 속 조항은 한없이 제한적이고 조건부였다. 특수한 상황, 특수한 조건에서만 낙태가 허용되었다. 성폭력 피해,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혹은 심각한 유전적 질환이 명백하게 판정된 경우가 그에 해당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마치 서구사회를 따라가는 진보적인 개혁처럼 홍보했다. 정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장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시대적 조치’라는 말이 반복되었고, 관영 언론들은 ‘낙태권 보장 시대의 개막’이라는 승리에 도취된 문구를 내보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문구와는 달리, 현실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바깥의 사람들, 도시 외곽과 달동네, 고시원,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이 낙태권이란 말은 다시금 그림의 떡이었다. 법은 그들에게 적극적인 낙태를 권장했지만, 정작 그들에겐 의료 접근성이 턱없이 부족했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려면 한참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고, 막상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으려면 그에 해당하는 비용은 늘 몇 달치 월세에 육박했다. 병원에 가는 순간 신분 확인과 서류 절차가 요구되었고, 이 또한 곧 그들의 비루한 삶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낙태권’은 종이 위에만 존재했다. 돈이 있고, 보험이 되고,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바깥의 여성들은 여전히 불법 시술소를 전전하거나, 아예 아무 조치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품고 살아야 했다. 그 사이 출산율은 기형적으로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부유층은 여전히 아이를 낳지 않았다. 커리어와 안정적인 삶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고, 설사 임신을 해도 합법적인 낙태권을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계층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합법적인 틀 안에서 낙태를 동해 자신들의 삶을 지켜나가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사회가 원하지 않는 바깥의 아이들은 계속 태어났다. 원하지 않는 자리에서, 준비되지 않은 가정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부모 밑에서. 인구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가난한 곳에서의 출산은 폭발적으로 늘어만 갔다. 정부가 그토록 내세운 ‘낙태권 보장’이라는 말은, 바깥사람들에게는 단지 책임 전가에 불과했다. ‘우린 기회를 줬다. 선택은 너희 몫이었다.’ 하지만 정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젠 희미해져 가는 중산층의 사람들, 그리고 바깥은 아니지만 도시 안에서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던 이들도, 분노의 화살을 바깥의 사람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도 지금은 힘들지만,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여유롭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야. 계획하고 준비해서,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들의 눈에 비친 바깥의 사람들은 달랐다. ‘저들은 게을러서 저 모양이지. 저들은 노력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산 거야. 똑같이 가난해도, 똑같이 힘들어도, 내가 이렇게 버티고 발버둥 치는데 저들은 왜 그러질 않았을까.’ 도시 안쪽의 사람들은 끝내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팍팍한 현실이 견딜 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깥을 혐오했다. 스스로는 늘 위를 보았다. 조금 더 나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주말마다 차를 끌고 나가는 사람들,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을 숭상했다.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어’라는 헛된 망상에 빠져 자신을 다독일수록 바깥의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기 쉬워졌다. 아니 사실 그들은,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바깥의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 경멸은 단순한 멸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토록 힘들고 쪼들리는 삶을 사는 이유를 ‘사회 전체의 탓’으로 돌리는 대신, ‘저들 탓’으로 돌리기 훨씬 쉬웠고, 그러기 위해 꼭 필요했던 감정이었다. 그렇게 도시는 두 겹으로 갈라졌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만이 아니라, 못 가진 자와 더 못 가진 자로. 그 경계선 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바깥사람들을 향한 혐오를 점점 더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었다.


결국 참고 참았던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억울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야 했고, 또 열심히 수많은 자격증과 시험을 보아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했고, 매일같이 출근해 세금을 내며 사는데, 왜 내 세금이 저들에게 쓰여야 하지?’ 이 질문은 분노를 넘어서 증오로 변해갔다. 이미 도시 사람들 눈에 그들은 같은 국민도 아니었다. 답이 없는 존재, 애초부터 개, 돼지 같은 벌레 같은 존재. ‘저런 것들에게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억울해했다. 자신들은 아이 하나 낳을까 말까, 매번 은행 대출과 직장의 불안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데, 그래서 결국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늘 전전긍긍하는데, 왜 저들은 저렇게 쉽게 학교를 새로 받고, 왜 보조금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출산을 계획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런 준비도 책임도 없이 아이를 낳는 저들이 마치 특혜를 받는 존재처럼 보였다. 집값이 올라 아이 방 하나 마련하기도 힘든 자신들과 달리, 바깥의 그들은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로 학교를 새로 얻고, 급식을 보조받고, 병원까지 지원받는 것처럼 보였다.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부모 잡아먹을 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