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글을 쓰려고 해. 응원해 줘.”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노트북의 위치를 식탁으로 옮기며 새로운 시작점을 찍게 되었다. 그 시작점을 가장 가까운 이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엄마, 어떤 걸 글로 쓸 거예요? 내 이야기 많이 써주세요. 나쁜 거 말고 좋은 걸로만. 엄마가 작가가 되는 거예요?”
예비 6학년 막내는 폭발적 수다를 시작한다.
“엄마, 내 사진이나 내 이름 들어가는 건 아니죠?”
“엄마 진짜 책 쓰는 거예요?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시크한 첫째와 다정한 둘째 반응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같은 엄마 아빠 사이에 태어나 같은 집에서 같은 밥 먹고 10년 넘게 살았는데 우리 집 삼 남매는 매우 다름으로 가득하다. 그 다름이 눈부신 계절도 있었고, 그 다름에 시린 계절도 있었다.
암호명 5-4-2. 자녀가 몇 명이냐는 질문과 함께 연이어 묻는 말,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
5-4-2 암호명을 말했을 때, 입과 눈이 함께 커지는 상대방의 반응은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하기도 했다.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암호명의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스스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호명을 말하던 시절 나의 기록이 10년 뒤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지 그때는 몰랐겠지. 마치 10년 뒤의 나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10년 전의 나의 글이 새삼 귀하고 감사한 요즘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는지, 얼마나 귀한 사랑을 받고 지금 교실에 앉아 있는지. 그래서 아이들 중에 유독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때로는 냉혹하게 평가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아이들에 대한 내 감정을 정돈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엄마가 되어서 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누군가의 삶에 대해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것에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학급에서 아이들을 혼낼 때는 감정을 배제하고, 일어난 사건이나 행동에 대해서만 지도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우리 집. 엄마가 되어서 학교에서는 좀 더 성숙한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하는데 정작 집에서는 감정으로 똘똘 뭉쳐서 언제든 불꽃놀이를 할 준비가 된 엄마가 된다. 해야 할 일 제때 하지 않았을 때, 여러 번 말했는데 움직이지 않을 때, 티격태격 서로 다툴 때 불꽃놀이는 시작된다.
“엄마,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에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막내가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순간 말문이 막히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사실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닌데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에 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에 ‘화’라는 가장 쉽고 원초적인 감정을 사용해 버렸다.
사춘기를 맞이한 삼 남매의 우당탕 고단함을 글로 쓰려고 시작했는데 막상 쓰다 보니 내 반성이다. 분명 삼 남매 교육으로 힘들어서 울고 싶었을 때도, 앞이 캄캄할 때도 있었지만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는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인간의 이기적인 기억력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린 그림 같던 암호명 5-4-2는 각자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며 성장해 나가는 16-15-13이 되었다. 각자 그려나가는 그림을 아낌없이 응원하는 엄마가 되자. 다름이 주는 행복함으로 고단함을 덮어버리는 엄마가 되자. 결국 우리가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다름의 눈부신 계절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