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 순간 기록하다

by 한시은

18년, 짧지 않은 시간이다. 나는 매년 다른 교실에서 매해 새로운 학생들과 함께 한 순간순간을 되짚어 보면, 공통의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감정과 자극이 나를 툭툭 건드리는 경우가 있다. 나를 툭툭 건드리는 그 녀석, 마음 따뜻한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준 것이 별로 없는데,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었다. 마음 꼭꼭 눌러 담아 전하는 빈도가 꽤 많았음에도 학년이 지난 뒤 나를 완전 지워버리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일의 반복을 통해 내가 익힌 것은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너무 좋아하지도, 너무 무심하지도 않은, 교사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해보자라고 다짐하지만 좋음을 숨길 수 없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내 마음과 비슷한 마음결을 가진 학생과의 궁합이 잘 맞으면 그 해는 서로에게 행복하다. 서로 좋음이 통하였으니. 올해는 그런 학생을 만났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진즉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었으나 매 순간 마음으로 남기었던 나의 게으름에 다시 한번 부끄러움을 느끼며, 뭉클 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학교 급식이 너무 맛있어서 학생들 모두 교실로 돌아간 뒤에도 야무지고 맛나게 급식을 즐기는 나에게 최대 다이어트의 적이 되어버린 내 사랑 급식. 그래서 10월부터 점심을 간단히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먹기 시작했다. 나의 급식 패스를 눈치챈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거든다.


"선생님, 안 먹는 건 안 돼요."

"선생님, 급식은 먹어야 해요."

"선생님, 우리 엄마가 간호사인데 안 먹고 빼면 건강에 안 좋대요."

"큰일 나요 선생님."


가만히 듣다 보니 진짜 큰일 날 판이다. 내 다이어트의 판이 너무 커진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안 먹겠다는데 왜 이렇게 다들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르 키우는지, 민망함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그 뜨거움도 잠시, 그들은 나의 급식 패스를 어느새 잊고, 배고픈 내 눈빛을 못 본 체 맛나게 급식을 먹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생이 곡물 라떼를 건넨다. 급식실에서 안 먹고 가지고 왔다며, 선생님 배고플 때 드시라고 말한다. 그 녀석, 선생님 좋아요를 늘 얼굴에 가득 품고는 여름 방학 하는 날도 눈물을 흘렸던 감성 충만 남학생이다. 혼날 때는 세상 슬프다가 10분을 넘지 않는 슬픔을 지닌 녀석, 5학년 남학생 특유의 심플하고 건강함이 충만한 학생이다.


오후에 곡물 라떼를 먹으며, 속이 뜨뜻해졌다.

그리고 1주일 뒤, 마카롱이 나왔다. 급식판을 받고는 또다시 나오길래

"어허, 다 먹고 또 받아야지. 욕심부리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서는 마카롱을 또 하나 받아온다. 그리고는 한 마디 하려는 나에게 쑥 내민다.

"선생님, 드세요."

"너, 혹시 지난번 라떼도 선생님 것 따로 받은 거야?"

"네, ㅎㅎ. 선생님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맙소사, 마음의 파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파도는 실로 오랜만이다. 이렇게 주전부리로 내 마음을 두드리다니!


그 이후로 금요일 주전부리 나오는 날이면, 내 것을 꼭 챙겨 손에 쥐어 주었고 나도 모르게 금요일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물론 나의 다이어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주전부리는 놓칠 수 없다.

세상 그 어떤 마트에서도 살 수 없는 특별한 간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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