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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Aug 27. 2022

부부라는 그 질긴 인연

비지 않은 빈자리

 부부라는 관계는 참 독특하다. 요즘 세대는 모르겠으나 내 아버지와 엄마의 세대만큼은 확실히 끈덕지고 질긴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 독특한 관계는 사랑을 넘어서고 미움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이다. 그걸 옛 어른들은 미운정, 고운정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그것을 어떻게 부르든, 그게 분명하게 증명되는 건 부부 중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때인 듯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다니. 니 아빠 왔다. 안 들리냐? 그런데 왜 안 들어온다냐. 비밀번호를 까먹었다니?"


 엄마는, 갑자기 자다 말고 아빠가 왔다고 그런데 왜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안 돼, 엄마는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계시는 것 같다고, 언제고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그러했다. 시간이 늦었는데 왜 아버지가 오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했었으니 엄마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계신 것만 같이 느끼는 것과 '살아계시는 것으로 아는 것'은 엄연히 의미가 다른 법. 심장이 툭, 하니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괜찮아요? 밖에 아무 소리 안 들리는데? 그리고 아빠 돌아가셨잖아. 엄마가 아마 자다 깨서 그런 가부다. 엄마 괜찮아?"

 잠시 기계가 오작동하는 것처럼 어버버, 그런 엄마에게 불안의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말을 이었다.

 "엄마, 나도 가끔 그래. 괜찮아. 나도 그런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어떻겠어. 엄마도 그런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 말을 뱉고 나니,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맞네, 맞어. 내가 왜 그런다냐. 정신이 깜박했나 보다. 그런데 어쩜 꼭 니 아빠가 온 것 같다니. 내가 꿈결에 그랬나 보다."


 엄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다.


 "분명, 니 아빠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니 아빠 죽었지, 그렇지, 그러고 있네. 내가 이상한 건가... 나도 어디 아픈 건가... 괜히 걱정되네. 나 괜찮겄지?"

 "그럼 엄마. 다 그래.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더 그렇지. 엄마 어여 주무세요. 괜찮아요. 그리고 다들 그래요. 엄마만 그런 거 아니야. 엄마 잘 자요!"

 

 부부라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이며 앞으로도 경험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바로 이 관계는 참 이상하다. 당신 삶에 대한 허무함과 그 허무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아버지를 그렇게 원망하고 힘들어했음을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건만 어머니의 옆자리는 비어 있으나 비지 않은 채였다.




 '복숭아가 열렸네. 몇 개 따가야겠다.'

 

 엄마는 복숭아 나무로 다가가 복숭아를 서너 개 따기 시작했다. 그러나 웬 걸. 방금 딴 복숭아가 다 썩어있었다. 나무에 맺힌 복숭아를 다시 보니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아니, 무슨 복숭아가 다 이렇게 썩었다냐.' 아깝고 불쾌한 마음이 드는 순간, 엄마는 잠에서 깼다.


 "꿈이구나. 무슨 꿈이 이렇게 재수가 없을꼬. "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장폐색 수술이 있던 그날 밤 엄마가 꾼 꿈이었다. 나도 동생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었다. 적어도 하늘은, 엄마에게만큼은 아버지의 명운에 대해 숨기지 않았던 셈이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과 아내는 어떤 운명의 실타래로 묶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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