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적 소시민 Sep 10. 2022

엄마라는 이름의 인연

엄마와 엄마의 엄마

 내 앞에서 면회를 하던 사람이 내 시간을 5분이나 써먹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여기까지 2시간 반, 15분의 면회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달려왔건만 내 시간이 되어도 나는 '엄마의 엄마'를 만날 수가 없었다. 병원 측에서의 실수도 있었고 하필 내 바로 앞 면회자들의 대화도 끊어질 기세가 보이질 않았다. 슬슬, 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12년 만에 만나는 가족 상봉을 이런 식으로 방해받다니. 이 요양병원의 시스템이 보여주는 허점과 면회자들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태에 대해 머릿속으로 문제를 짚어대기 시작했고 어떻게 조리 있게 이야기해야 내가 덜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이야기할 수 있을지 대본을 짜기 시작했다. 30초 후에는 내가 생각해 놓은 대본대로 이야기하리라, ......... 마음먹자마자 저기, '엄마의 엄마'가 요양보호사와 함께 나오셨다. 앞선 면회자들의 대화도 거기에 맞게 딱 끝이 났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오신 '엄마의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저 ㅁㅁ이에요, 기억하시겠어요?"

 "어, 어.. 그려, 그려..."


 식사는 하셨어요? 몸 불편하신 곳은요! 아, 네네. 몸.불.편.하.신.곳.없.으.세.요오오?! '엄마의 엄마'는 그저

 '어, 그래. 밥은 먹었고? 그래....'

 끊어진 대화를 기어이 이어붙이는 것은 내 몫이어야 했다. 그 동안 찾아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 물으며 앙상한 대화에 흘러내리는 살들을 이어붙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엄마의 엄마'는 옆에 계신 요양보호사에게,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래?"


 이마 정중앙부터 서늘함이 퍼지기 시작했고 이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서늘한 기운이지만 이상하게 뒷덜미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엄마'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내 이름 석자를 '엄마의 엄마'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고 이런 일들이 으레 있었던지 자기 기억 속에는 없으나 중요한 누군가겠거니, 그리 여기고 면회를 나오셨던 것이다. 여기까지 오니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앞선 면회자들이 내 면회 시간 5분을 잘 사용해준 것에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할 판이다. 보다 못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엄마의 엄마'를 대신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식사는 잘하시는 편이세요. 그래서 걸으실 수가 없으니 근육이 많이 빠지셔서 많이 마르셨어요. 그렇지만 식사나 간식은 잘 하고 계세요. 이미 아시겠지만 치매 증상은 계속 진행 중이고 할머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첫손녀 분에 대한 기억도 딱 초등학교 5학년 정도까지가 다에요. 그래서 왕래가 없으셨던 친척 분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실 수 있어요. 너무 상심하시거나 실망하지 마세요."


 내가 어떻게 실망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가 원해서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거늘. 그럼에도 더 이상 무언가 대화를 이어갈 끈이 없다는 사실이, 어떠한 말을 해도 내 마음이 거기에 닿을 수 없음이 아프고 아플 뿐이었다. 괜시리 입안이 써서 입맛만 다시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의 엄마'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외할머니! 저 명근이에요. ㅁㅁㅁ! 외할머니 큰딸의 아들, ㅁㅁ이! 기억하시겠어요?"

 "ㅇㅇ이 아들? 우리 큰딸 아들?! 그래. 니 엄마는 잘 있고? 아픈 데 없어? 잘 지내?"


 작은 길 하나가 만들어졌다! 외할머니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몰라도, 당신이 직접 배아파 낳은 첫딸은 기억하고 있으셨다. 그리고 그 첫딸이 낳은 아들은 기억의 유무와 상관 없이 의미 있는 '남자'였으리라. 외할머니는 엄마가 잘 지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 하셨다. 잘 지내고 계시다고, 아픈 데 없이 건강하시다고.


 "그런데 왜 같이 안 왔디야."

 "차를 오래 못 타세요. 정말 오고 싶으셨는데 차를 오래 타면 많이 아프셔서 그래서 제가 대신 왔어요, 할머니."


 할머니가 그리웠을 얼굴은 사실 내가 아니었을 듯하다. 당신께서 배 아파 낳은 첫딸인 우리 엄마를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얗게 센 머리에 이제는 뼈밖에는 남지 않은 외할머니는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저 '내 딸'만큼은 아직 지켜내고 계셨다. 그 딸도 이제는 나이가 칠십을 넘었다. 잠을 잘 못 주무시고 점점 쇠약해져서 몸이 많이 무너진, 어쩌면 외할머니보다 먼저 가셔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늙고 있었다. 내 눈엔 더 늙은 할머니와 덜 늙은 할머니만 있을 뿐인데 여전히 그 둘은 엄마와 딸, 언제든 안기고 싶은 엄마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어리고 여린 딸내미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부라는 그 질긴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