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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Oct 30. 2022

엄마의 엄마와 보낸 하룻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 앞에 엄마는 늘 죄인인가 보다.

 엄마가 자신의 엄마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이다. 엄마의 모정이 얼마나 대단하고 끈질긴 것인지 자식 문제 앞에서는 자신의 이름 석자도, 엄마를 낳아준 엄마의 엄마와의 관계도 단호해지곤 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는 이러한 단호함을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


 엄마의 엄마는 철마다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보내셨고 쌀이며 반찬 그리고 그 사이 늘 크고 작게 돈을 보내곤 하셨다. 없이 사는 딸내미가 안쓰러워 엄마의 엄마께서는 늘 그렇게 첫째 딸인 우리 엄마를 챙기셨다. 그러나 우리의 가난은 밑이 빠진 독과 같아서 외할머니가 부어대는 정도로는 결코 채워지지 못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그런 외할머니의 물질 공세가 그리 탐탁지 않으셨는지 받기만 하시고는 외가 쪽으로 베풀 줄은 모르셨던 데다가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인색하셨기에 중간에 낀 엄마만 안절부절못하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외할머니가 넘어지시는 바람에 큰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처녀 때에는 배포가 크셨던 엄마 입장에서는 꾸어주지는 못할망정 얻어먹기만 하는데 그걸 제대로 갚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많이 힘드셨으리라, 결국 화병까지 얻으셨다.


 얼마 못가 엄마는 외가와 인연을 끊으셨다. 이유는 다양했다. 잘 사는 이모가 도와주지 않아서, 외할머니가 자잘하게는 도와주었지만 정말 필요할 땐 도와주지 않아서, 꼬투리를 잡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단 하나. 나와 동생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받은 건 고맙지만 갚을 길은 막막하고 지금 당장 이 집구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자식 건사하는 일뿐이다. 자식들이 먼저다.'


 그렇게 엄마는 외가와의 연락을 끊으셨고 가끔씩 외가 식구들에게 오는 연락들은 대부분 억울함과 아픔을 토로하는 엄마의 이야기로 끝을 맺곤 했다.

  



 2010  학원 생활을 정리하고 서산으로 일터를 옮기고 가장 먼저  것은 모아둔 돈을 가지고 외가로 내려가는 일이었다. 엄마에게 그리고 나와 동생에게 향했던 외할머니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순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씻고 싶은 마음이었다. 전주에 도착해서 큰이모와 작은 외삼촌을 뵈었다. 큰조카 온다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주셨다.


 "이모, 외삼촌. 그동안 감사했어요. 오는 길 이 마음 꼭 전하고 싶어서 편지 썼어요."

 "설마 편지만 쓴 건 아니겠지? 너 내가 집에 가서 봤는데 편지만 있으면 죽는거여!"

 슬며시 농을 던지는 큰이모에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에이 설마, 편지만 썼겠어요? 내 마음도 담았지."  

 "어허,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돈을 가져왔디야. 됐응께 넣어둬. 안 받을랑게."

 진중하고 과묵한 외삼촌의 표정이 사뭇 더욱 진지하다.

 "아녀, 나는 받을거여. 울 조카가 주는 첫 용돈, 나는 자알 받을 거다!"

 역시 화통한 큰이모는 뭐든 시원하고 개운하다. 두런두런 식사를 마치고 외할머니가 계신 외가로 향했다.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담긴 돈봉투를 조용히 건네드렸다.


 "뭐더러, 이걸 가져왔다냐. 니 엄마나 갖다줘. 할미는 암시랑도 안 혀. 그저 너거 엄마만 안 아프고 잘 살믄 돼."

 "이건 엄마가 드리는 거에요.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받은 고추장이며 내 학비며.. .그거 이자라고.. 더 잘 살게 되면 원금도 갚는다고... 엄마가 꼬옥 가져다 드리랬어요."

 "너그 엄마는 다 갚았어. 이미 다 갚었어. 더 못해줘서 내가 오히려 더 미안허지. 이건 어여 다시 엄마 갖다 줘."

 "에이, 이거 가지고 가면 저 엄마한테 혼나요. 이건 꼭 외할머니 필요한 곳에 쓰세요. 꼭이요."


 외할머니는 잠시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너그 엄마 고생 많았다. 너그 아빠랑 못 살겠다고 너 엎고 여그 왔을 때 내가 그걸 기어이 다시 돌려보냈어. 이렇게 힘들게 살 줄 알았으믄 그 때 안 보내는 건디, 그 때는 보내야 하는 줄로만 알었어. 그게 항상 맘에 걸려. 내가 해줄 수 있는 기 고추장뿐이었어. 가끔 보내주는 돈, 그게 다였어. 나는 니 엄마 힘들 때 제대로 품어주지도 못혔다. 근디 내가 무슨 수로 이 돈을 받어. 니 엄마는 이미 다 갚었어. 내가 갚을 게 있는 거지."

 "엄마가 모질에 외할머니랑 연락 끊었을 때 울 외할머니 많이 힘드셨겠네."

 "힘들긴 뭐 힘들어. 니 엄마 힘든 거에 비하믄 난 하나도 안 힘들어. 해준 것도 없이 시집 보내고 시집 가서 고생 직살나게 하는데도 나는 암것두 못해줬어. 니 엄마 하나 잘못 없다. 다 못해준 내 잘못이지. 그 때 내가 받아줬어야 하는긴데."


 그러고는 외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셨다. 나는 조용히 엄마의 엄마가 흘리는 눈물을 다 가슴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낳은 아들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면서 어떤 마음이셨을까.  


 다음 날, 외할머니에게 인사 올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가방 깊숙한 곳에 외할머니가 숨겨놓으신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내가 드린 용돈보다 꼭 배로 많은 돈과 함께.


 "니 엄마 갖다줘라. 니 엄마는 나한테 항시 잘혔다. 니 엄마는 나한테 갚은 것이 없어. 내가 갚아야 할 것만 남았지. 니 엄마한티 잘해줘라. 니 엄마는 내 딸이기도 한 것을 항시 잊지 말어라.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건강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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