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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업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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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Oct 04. 2022

환대하는 수업, 하나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신지요.

 "어서 오세요. 어떻게 해서 이 글을 보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과정이었든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그대의 마음은 어떤가요? 어떤 감정으로 오셨나요? 혹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혹시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어떤 감정으로 오셨든 괜찮습니다. 잘 오셨어요."




 아이들과 만나는 첫 수업, 그게 담임으로서 만나든 혹은 교과 교사로서 만나든 수업 첫 시간에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신뢰써클을 흉내낸 건데요, 선무당이지만 마음과 본질을 잃지 않는다면 흘러가야 할 진심은 분명 제대로 흘러가더라구요.


 수업에 사람들이 오기 전, 저는 오는 사람들의 수만큼 의자를 원형으로 빙 둘러놓습니다. 그리고 그 원의 중심에는 촛불과 꽃을 준비하죠. 그리고 그 주변에는 '사랑, 신뢰, 믿어줌, 껴안아줌, 희망, 괜찮아요. 고마워요. 어떤 모습이든 환영해요' 등 의미 있는 낱말들을 잘 깔아놓습니다. 의자 바깥으로는 제가 사랑하는 시들을 보기 좋은 곳에 깔아놓습니다. 아차차, 적당한 음악을 한 곡 틀어놔야죠. 교실에 들어올 때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오도록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아이들에게 선물합니다. 이제 제가 만날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네요.


 아이들이 들어오면 저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천천히 시를 읽거나 혹은 의자에 앉아 원의 중심에 있는 낱말들을 응시해 달라고' 합니다. 혹은 조용히 침묵하며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인지, 어떤 감정이 먼저 느껴지는지 생각해 달라고 하죠. 시간이 되면 이제 모든 아이들을 원으로 초대합니다. 원하는 자리에 앉아달라고 부탁하죠. 그리고 조용히 한 번 더 부탁합니다.


 "어서 와요. 잘 왔어요. 혹시 지금 어떤 마음으로 여기 왔어요? 자기 마음을 한 번 들여다 봐 주시겠어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되었다고 느껴지면 저는 저부터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나눕니다. 원래는 원하는 목소리를 초청해서 나누면 좋겠지만 첫시간이기도 하고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저부터 나누고 제 옆으로 돌아가면서 어떤 감정인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론, 나누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왔는지 아이들의 마음을 듣습니다. 나눔이 끝나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잘 왔어요. 어떤 감정 상태든 괜찮아요, 환영합니다. 여기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다양한 일로 우리가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와줘서 고맙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수업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가급적 짧게라도 혹은 두 사람, 세 사람끼리 어떤 감정으로 왔는지 나누게 한답니다. 설령 짜증과 분노로 이곳에 왔어도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힘든 감정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앉아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인사를 나눕니다. 이 별거 아닌 작은 수업의 시작이 때로 어떤 아이들에게는 '별것'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깜박 감정 나눔을 하지 않고 수업을 시작하면 몇 친구들은 저에게 '선생님! 우리 감정을 아직 나누지 않았어요!'라고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리 바빠도 '아이쿠~ 내가 깜박했네. 알려줘서 고마워요.'라고 사과를 하고 감정 나눔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짝끼리 혹은 세 명 정도가 모여 자신의 상황을 나누고 감정을 나눕니다. 교실 안은 기분 좋게 소란스러워집니다. 그 소란스러운 수다를 듣고 있으면 꽤나 그럴싸한 합주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조금씩 사그라들 때 즈음, 저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죠.


 "어서 와요. 잘 왔어요. 어떤 감정이든, 괜찮아요. 환영해요. 어떤 상황이든 지금 여기에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어서 그 자체로 저는 참 기뻐요. 자, 우리 수업 진행할게요. 오늘 배울 내용은요......"

 

 종종, 어떤 분들이 제게 묻습니다.


 '수업 시간에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 선생님이 하는 수업이 국어 수업이니까 가능한 것 아닐까요?'


 맞습니다. 아마도 제 수업이 국어 수업이어서 어쩌면 조금은 낯부끄러울 수 있는 이런 인사를 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런데, 아마 제가 국어 선생이 아니어도 이 작업만큼은 계속 이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 이유는 제가 참 사랑하는 시 한 편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나이가 저보다 적은 것은 문제 되지 않을 겁니다. 성별도, 부모님의 직업도 상관없을 겁니다. 그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온 이 녀석들의 일생이 제 앞에 있을 뿐입니다. 부서지기 쉬워서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들이 제 앞에 섰습니다. 그런 아이들 앞에 감히, 환대를 흉내낼 뿐이지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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