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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Oct 10. 2022

환대하는 수업, 둘

나를 부르는 시와 만나기

 좋은교사에서 2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기독교사대회에 처음 참여했던 해가 2016년이었을 겁니다. 처음 대강당에 들어갔을 때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던 선생님들의 기도 소리에 저절로 무뤂을 꿇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건 정말 경외감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저 대강당에 들어갔을 뿐이었는데 말이죠.


 그 교사대회에서 운영하는 한 꼭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시를 매개로 하는 회복적 신뢰써클이었나, 어쨌든 당시 저는 '회복'이라는 그 말에 꽂혀 거기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뢰써클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때였습니다. 교사대회 대강당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게 위에서 아래로 강렬하게 내려오는 어떤 경외감이었다면 이 신뢰써클에서 느꼈던 감정은 차오름이었습니다. 밑바닥부터 천천히 제 영혼을 다독이며 껴안아주는 예의 바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때 그 모임을 이끌어 주셨던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많은 시들이 있을 거에요. 그 시들과 만나주세요. 그런데 어떤 특별한 시가 여러분을 부를 겁니다. 여러분을 부르는 그 시와 만나세요. 그리고 그 시를 가져가 주셔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주세요. 분명히 이 시들 중 하나가 여러분을 부를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 거짓말처럼 정말 나를 부르는 시를 만났고 그 시 앞에서 펑펑 울며 내면을 들여다보았지요.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시 앞에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저는 정말 소리내서 울었답니다.  


비누,     - 정진규 -

비누가 / 나를 씻어준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믿고서 살아왔는데
나도 비누를 씻어주고 있다는 걸! / 알게 되었다
몸 다 닳아져야 가서 닿을 수 있는 곳, / 그 아름다운 소모를 위해
내가 복무하고 있다는 걸 / 알게 되었다

(중략)


왜 그렇게 울었는지 말과 글로 오롯이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말과 글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그걸 말로 하고 글로 쓰는 순간 시와 만났을 때의 감동이 퇴색되고 말아버리니까요.



 아이들과 만나는 첫 수업, 그래서 저는 그 때 만났던 시를 비롯해서 많은 시들을 원 안은 물론, 바깥 쪽에도 깔아둡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기를 부르는 시와 만날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시들과 만나고 그 시들 중 자기를 부르는 시와 만나 그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조용히 음미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부르는 시와 만난 아이들은 그 시를 가지고 다시 원으로 돌아옵니다. 조금 더 그 시와 만나게 하고 이제는 왜 그 시가 자신을 불렀는지 아이들과 나눕니다.


 "그냥 제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거든요."

 "시를 읽는데 그냥 이 시가 왠지 좋았어요. 특히 이 구절이 와닿았어요. 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넘어갈게요."

 "패스요."

 "저도 패스."

 

 아이들이 제가 시와 만났을 때처럼 감동과 눈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건 제 욕심일 뿐입니다. 몇은 귀한(?) 수업 시간에 왜 이런 걸 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몇은 자신을 부르는 시와 만나는 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기회만 만들 뿐, 그 기회 안에서 배움을 만드는 것은 아이들 자신일 겁니다. 어떤 만남도 어떤 수업도 의미 없이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이쿠야, 연달아 나오는 패스에 바른생활 학생들 몇 명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녀석들은 무언으로 친구들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제가 한 번 나설 때입니다.


 "괜찮아요.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고 싶으면 그대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그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괜찮아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혹시 갑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수 있으니 약 2분 정도 침묵하면서 기다릴게요. 침묵을 깨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침묵을 통해 그대가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침묵을 누려봅시다."


 한 녀석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뭔가가 혀 끝에 감도는 듯, 시간이 흐릅니다. 그러면 또 옆에 있는 친구들이 쿡쿡 찌르기 시작합니다. 제가 한 번 더 나설 때네요.


 "우리 조금 더 기다려 줄 수 있어요. 그러니 준비되면 이야기해 주셔도 됩니다. 2분 정도 침묵하면서 기다릴 테니 준비되면 이야기해 주세요. 급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침묵의 시간을 우리는 잘 견디지 못합니다. 그 여백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 안달을 내지요.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우리는 배워왔나 봅니다. 몇 년 전, 커뮤니티를 주제로 한 신뢰써클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침묵'을 즐겁게 기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아도 기다려주는 것이 많이 어렵지 않습니다.




 담임으로서 아이들을 만나든 국어 교사로서든 아이들을 만나든 첫 만남, 첫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메세지는 딱 하나입니다.


이곳은 안전한 곳이란다.
너를 만나서 기쁘고 너는 말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단다. 침묵하고 싶을 때 침묵할 수도 있단다.
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거고, 너를 배려하기 위해 노력할 거란다.

이곳은 네가 어떤 모습이든 괜찮은, 안전한 곳이란다.


 앞으로 저는 다양한 수업 방식으로 아이들의 배움을 도와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열강을 하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지식을 전수할 준비를 했다고 해도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라면 그리고 교사가 아이들을 배려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 수업 공간은 온전하지 못할 겁니다.


 추신. 여기에 적은 방법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선생님들은 선생님들 나름의 노하우로 아이들을 환대하실 거고,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선물하실 것이며, 가장 좋은 것으로 아이들을 배움으로 이끌 테니까요. 그저 '더 나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는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몸부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께서 선생님이시든, 어머님 혹은 아버님이시든, 직장인이시든 아니시든 아주 작더라도 의미 있는 시간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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