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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Jul 12. 2023

교토에서 저녁을

비가 그치고, 후시미이나리.

 우산까지 챙겼건만 호텔에서 나오자 비는 그쳐 있었다.

 ‘아니 오늘 이렇게까지 편애를 해주신다고?! 진짜로?!!!’ 하는 마음에 몸도 마음도 가볍다. 일부러 다른 길로 접어들며 ’헤매기로 작정’한 결과 왠지 들어가보고 싶은 가게도 하나 발견했다. 교토역에서 이나리 역까지 가야 하는데 분명 딱 두 정거장인데 지하철 표를 도무지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또 한참을 ‘헤맨다.‘ 모를 땐?!!! 물어본다. 스미마셍~~~!! 그렇게 지하철 표를 끊고 저기 오는 저 전철이 과연 이나리 역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지 또 궁금하던 차에 또 한 번 스미마셍~~~!!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나리 역에 도착했으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내 몸은 기어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 번 왔을 때 먹었던 우동집은 문을 닫았고 규카츠 가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수.제.버.거.


 시원한 맥주 한 잔과 가장 평이 좋다는 추천 버거에 양파링튀김까지 시켜놓고는 잠시 바깥을 들여다 본다. 계속 보다 보면 관광객과 이곳에 사는 사람은 정말 확연히 구분이 된다. 관광객 혹은 여행자로서 바라보는 바깥이야 낯설지만 설레는 공간이겠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일상’이겠구나 싶다. 그리고 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은 분명 다를 수밖에는 없다. 여기서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은 어디로 ‘여행’을 떠날까, 궁금해졌다.


 누가 그랬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그래서 내 노후를 준비하는 것도 ‘남’을 위해 돈을 쓰는 것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내 기준에서는 ‘낭비’를 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투자해 준 2년 전의 ‘나’에게 감사를 아니 바칠 수가 없다.

 ’지금의 내가 한국이었다면 몇 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그냥 ‘안 먹었을 음식‘들과 맥주 한 잔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건 2년 전의 ’나‘가 제게 준 헌신이자 희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라고 어디 홍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사랑도 줄 줄 아는 듯하다.

 저녁 무렵의 후시미이나리는 어떨까를 생각하기엔 저녁 5시 반은 여전히 대낮이다. 그래도 걷다 보면 분명 노을에 젖은 도리이들을 볼 수 있겠지, 싶은 마음에 걷기 시작한다. 후시미이나리는 어쨌든, 산을 올라가는 여정이다 보니 평탄한 길과는 다르다. 어떤 이는 천천히 쉬어가며 걷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의 걸음에도 관성이 있어서 한 번 걷기 시작하면 일정 거리는 가급적 주욱 올라가는 게 편하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 도리이의 저 빛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배려하려면 눈치껏 내가 안 보이겠다 싶은 위치에서 멈춰주는 게 나름 ‘예의’이다. 솔직히 나한테나 예의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예의일까 싶기는 한데 이번 여정은 꽤 의미심장하다. 서로 말이 통할 리 없는, 꽤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사람들이 정말 대동단결해서 자연스럽게 멈춰서 사진 찍기를 기다려 준다. 그리고 나름 배려받은 사람은 사진 한 장을 기꺼이 찍어주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든지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 배려받은 대로 누군가가 사진을 찍을 때 기꺼이 기다려준다. 사실, 올라가는 사람들 빤하다. 다른 데서 봤던 분들 여기서도 본다. 서로 말은 안 해도 내적 친밀감이 꽤나 쌓였을 거다. 어쨌든 산 정상까지 찍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를 배려해 주고 또 나 역시 그분들을 배려해 주는 ‘세계시민의 태도’를 경험하고야 말았다. 걷는 내내 힘들다기보다는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사랑도 할 줄 아는 듯하다. 산 정상까지 그렇게 기분 좋은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자꾸 서로 눈이 마주치는 한 ‘녀석’이 있었다. 분명 한국인인 거 같은데 꽤 자주 마주치네, 했는데 결국 그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유 코리안?”


 이건 정말 영어가 아니라 한글로 적어야만 하는 딱 그 발음이었다! 네, 한국인이에요,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녀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렇게 여자친구 이야기며,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한 제자 녀석과 오버랩이 된다. 그래서 그랬나, 내가 가르친 녀석처럼 느껴져 녀석이 하는 모든 선택들이 참 어여쁘고 귀했다. 산 정상에서 말동무를 하며 내려오는데 꼭 이 녀석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스무 해 잘 살아왔다고 꼬옥 칭찬해 주고 싶었다. 시간이 일곱 시를 넘어서인지 상점은 거의 문을 닫았고 아까 내가 먹었던 햄버거 가게로 다시 향했다.

 

 스무 살도 넘었겠다, 까짓것 맥주 한 잔은 괜찮겠지 싶은 생각에 아까 먹었던 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맥주 두 잔을 시켜서 식사를 대접했다. 후시미이나리를 올라가는 내내 경험했던 그 ‘배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녀석이 한국인이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녀석에게는 꼬옥 작게라도 밥 한 끼를 먹여서 보내고 싶었다. 밥을 먹고 또 각자의 길을 가는데 연락처를 묻길래, 조용히 우리의 길을 가자고 했다. 여자였.....다면... 달랐.......지 않았을 거다. ^^*


 연락처를 받으면 한동안은 연락도 하고 그러겠지. 그러다 서로의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조금씩 거리가 생길 거고 분명 어린 너는 이게 부담이 될 게 분명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나이 많은 형이 사준 작은 밥 한 끼가 따뜻한 경험이었으면 그걸로 충분할 듯했다. 앞으로 녀석이 경험할 세상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도 가끔 예기치 않게 따순 밥 한 끼 대접받을 일은 분명 많을 것이다. 나중에 경험할 걸 여행지에서 한 번 경험했다고 치면 좋겠다.




 첫날, 산을 넘은 자가 행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막걸리 한 잔에 해물 파전. 그러나 여긴 어디? 교토. 어쩔 수 없다. 아까 봐둔 오코노미아끼 집으로 가자. 거기서 맥주 한 잔과 일본식 빈대떡 한 장 먹는 것으로 여행자가 마땅히 행할 도를 완성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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