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십일월요일, 무계획을 시도해 보다.
무조건, 도착 시간을 기준으로 거슬러 출발 시간을 정한다. 오늘 비행기 시간이 9시 30분, 두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하니 7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과 주차장에 변수가 생길 수 있으니 이것저것 포함하고 여유 시간 삼십 분 정도를 주고, 에... 막히진 않을 테니 약 두 시간 걸린다고 생각해서 새벽 네시 반에는 일어나.... 아니지 씻고 뭐하는 시간도 생각해야 하니까 음... 어... 결국 3시 40분 기상으로 잡았다. 아차, 일어나려면 늦어도 열 시에는 잠들어야겠다!!!!! 그러고 바로 잠이 드나...? 거의 한 시간을 핸드폰을 붙들고 쳐다보다가 잠에 들었다.
물론, 집착에 가까운 저 시간 안배가 어떤 이에게는 꽤나 불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당장, 오늘 새벽만 보더라도 내가 옳았다고 자부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깜박하곤 한다. 오늘 새벽도 그렇다. 떠나기 전에 채워야 할 화장품용 주머니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늦어지면 화장품 없이 가리라 마음을 먹고 10분 알람을 맞춘 후 화장품 가방을 찾기 시작한다. 그게 뭐라고, 등에 땀이 줄기를 이룬다. 그렇게 십 분이 흐르고 그냥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일어나자마자 벗어둔 잠옷 사이로 빼꼼히 찾던 가방이 보였다. 예상 시간보다 약 20분 정도 늦어졌지만 그래도 이걸 다 감안한 나의 혜안(?) 덕분에 더 늦어지진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갑자기 몰아친 비바람에 차가 크게 흔들, 기름 채우는 걸 깜박한 나 자신을 타박하며 마음도 한 번 크게 흔들. 그래도 공항까지 잘 도착하고 나니 출발 세 시간 전. 누구는 이렇게 일찍 온 게 후회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오히려 내 마음은 편-안.
계획성이 곧 안전이요, 안전의 기준이 곧 계획임을 신봉하는 내가 세운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가급적 무계획‘이다.
- no, No, NO. 안돼요. 가이드북 치워요.
왜요?
- 그건 관광객을 위한 거에요.
내가 관광객이에요.
- 아니, 당신은 여행자예요!
차이점이 뭔데요?
- 관광객은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해요.여행자는 경험을 하고 싶어 해요.
때때로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게 뭐가 문제에요?
-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탈출하려고 왜 삶을 낭비하죠?
인스타를 보다가 짧은 영상에 눈길이 갔고 그 영상 중에서 ‘경험’이라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관광이든 여행이든 지금 내가 누리는 ‘일상’이 있어야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 나이가 되어서인지 경험하는 여행자를 아주 조금이라도 연습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세운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가급적 무계획’. 내 성향을 너무나 잘 알기에 너무 낯설면 분명 호텔에만 있으려고 할 게 뻔했다. 그리고 완전한 무계획은 아직 무리다. 그래서 이번엔 그나마 많이 가본 일본으로 하고 내가 가장 머물고 싶었던 교토로 잡는다. 그리고 내 나이에 에어비앤비 혹은 게스트하우스... 놉!! 가성비 좋은 호텔로 잡는다. 나머지는 그냥 가고 싶으면 가는 걸로. 헤매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모르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기, 누군가의 도움에는 기꺼이 응하기 그리고 넉넉하게 걷기.
그럭저럭 교토역까지 도착했는데 아니, 여기서 3분 거리라는 호텔이 내 눈에만 안 보인다.
‘와.신.난.다.이.주.변.을.산.책.할.절.호.의.기.회.네.이.런.하.늘.이.점.점.캄.캄.해.지.는.데.괜.찮.은.거.겠.지.‘
헤매기를 약 30분. 이 멍텅구리 핸드폰 지도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한 어르신께 물어봤는데 모르시겠다는 눈치였다. 그 때!!! 영어를 조금 하신다는 대학생으로 보이는-그런데 실상은 마흔여덟이시라는-분의 도움으로 함께 걸으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 그분도 모르시는 눈치였다. 사람이 참 그런 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말도 잘 안 통하는 아저씨의 배려가 사람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준다. 거기서 헤매기를 약 십 분. 그래도 웃으며 대충 길을 찾은 듯하다고 웃으며 헤어지고 정말 그 길로 조금 걷다 보니 호텔이 나왔다. 할렐루야!!! 호텔이다!!!!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는데 오메?! 한국인이다!!!!! 체크인 편-안하게 완료하고 짐을 풀고 나니 하늘에선 소나기가 쏴아아.
신께서는 나를 정말 사랑하시나 보다. 아니지... 이건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일면 이기적인 감사 아닌가? 됐어! 까짓것, 오늘은 나도 편애 좀 받아보자구!!!
다분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감사지만, 뭐, 오늘만큼은 정말로 편애받는 어린 아이가 되고 싶었나 보다. 어른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완벽하게 정확하게 뭔가를 준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누가 보면 이기적이라고 여길 생각도 서슴없이 질러버린다. 혼자 온 여행지에서만큼은, 그냥 오롯이 ‘나’만 보고 싶은가 보다.
좋다! 진짜 좋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잘
비 오는 교토라니!!! 잠깐, 비가 오면 누구 후시미이나리를 가보라고 했었는데....!!!
일단, Go!!
호텔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든 생각이 비 오는 후시미이나리였다. 비라고는 정말 끔찍하게 여기는 내가, 우산도 챙겨들었다. 까짓것, 내 마음이 지금은 후시미이나리를 원한다. 중간에 돌아오더라도 일단 간다!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