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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Apr 01. 2024

내 집 말고 '우리집'

잘 가렴.(2) 

 학원으로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아니, 왜 비둘기들한테 모이를 주냐고, 내 말은!! 나라에서도 그러지 말라고 그러는데 왜 할머니가 모이를 줘서 동네를 비둘기 똥통으로 만드냐구요. 아니, 좀 말씀 좀 해보세요. 좋게 좋게 말씀드렸잖아요.”


 자식 앞세운 할머니가 고양이 밥에 이어 이제는 비둘기들한테 모이를 주기 시작하셨나 보다. 고양이 밥 주는 거야, 뭐 할머니 혼자서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 입장에서는 속이 부글거리지만 그냥저냥 참을 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돌려 보니 ‘우리 동네에 비둘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구구구구 소리가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 구구구구 소리 탓인지 우리 동네 길에만 허연 비둘기 똥이 잔뜩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그걸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하필 대놓고 비둘기 모이를 뿌려대는 할머니를 동네 미용실 사장 아줌마가 본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씀을 드리는데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비둘기 모이만 뿌려대니 미용실 사장 아줌마도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것이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막 화내고 그러는 사람 아니잖아. 나도 좋게 좋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슨 대꾸를 해야지!! 어? 나만 좋자고 이러냐고. 고양이? 불쌍하지. 비둘기? 그래 불쌍한 거 알지. 근데 고양이 무서워하는 동네 아이들, 비둘기 무서워하는 슈퍼집 아줌마도 생각해 줘야지. 바로 옆동네만 봐도 딱 보여. 우리 동네만 그으으렇게 비둘기들이 많아. 그렇게 불쌍하면 자기가 델꼬 가서 키우면 되잖아. 왜 동네 사람들한테도 피해를 주고 또 나쁜 사람을 만드냐는 거야, 내 말은. 아니, 말씀 좀 해보시라구요.“


 할머니는 비둘기 모이를 마저 주고 손을 탁탁, 털어냈다. 그러고는 천천히 주저앉아서는, 눈에서 물을 쥐어짜듯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하셨다. 그 소리를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쥐어짜고 목에서 우는 소리를 끄집어내셨다. 그렇게 우는 할머니에 미용실 사장 아줌마도, 가슴을 퍽, 퍽 치고는 ‘아이구야, 내가 이사를 가고 말지’를 외치며 미용실로 훠이훠이 들어가셨다.


 할머니는, 미용실 사장 아줌마는 물론이고 나라는 존재도 없는 듯이 그저 해야 할 일을 하시듯 쥐어짜듯 울음을 내뱉고만 계셨다. 눈에서는 간신히 눈물 두어 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원장님이 붙잡는다.


 “아까 저녁때 먹으려고 김밥을 샀는데 너무 많이 샀어. 밤에 출출할 테니 가져가서 먹어요.”


 결혼 안 한 미혼 남자라고 우리 원장님은 퇴근길에 으레 김밥 두어 줄이나 도시락을 준비해 주신다. 혹시라도 내가 민망할까 당신 드시려고 샀다가 남아서 주는 거라는 애정과 배려가 담긴 거짓말을 잊지 않으신다.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린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원장님이 주시는 김밥과 도시락이 어찌 됐든 나를 또 하루 살리고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막차를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렸다. 김밥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며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데 먼발치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검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뭔가를 퍼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출근길에 봤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우아하게 말하면 스테인리스 그릇, 편하게 말하자면 일명 ‘스뎅 그릇’에서 사료를 담고 있었다. 저 사료의 주인공은 뻔했다. 동네 고양이들이리라. 내 발걸음 소리가 멈추는 동시에 달그릭거리는 스뎅 그릇에 촤르르 담기던 사료의 작은 소음도 멈췄다. 서로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니었으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할머니는 자리를 피하시려고 무릎을 펴셨으나 워낙 급했던 탓에 몸의 중심을 잃어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잽싸게 할머니에게 달려들어 몸을 부축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괜찮혀, 괜찮혀." 


 당신도 많이 놀라셨는지 괜찮다는 말의 절반이 공기로 채워져 있는 듯했다. 어느 정도 몸을 운신하실 수 있겠다 싶을 때 조용히 손을 떼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못 들었으면 몰라도 들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빈말이라도 던져야 할 타이밍이었다. 드신다고 하면 드리면 될 일이고 안 드신다고 하면 그냥 내가 집에 가서 먹으면 될 일이다. 김밥을 사수할 만큼 배가 고프지도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겠다, 싶었다.


 "저, 김밥이 있는데 이것 좀 드실래요?"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팔을 휘적휘적 내저으며 마다하지도 않으셨다. 김밥이 든 봉다리를 할머니의 손에 들린 후 내 갈 길을 걸으려다가 인사치레 겸 한 마디를 건넸다. 


 "비둘기들이랑 고양이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유해 동물 어쩌구저쩌구 하는 거 이해도 가고 저도 그게 맞지 싶은데도... 그래도 내 눈앞에서 굶어가는 걸 보고 있기가 그렇더라구요. 비둘기까지는 아니어도 고양이한테 가끔씩 저도, 소시지를 던져주곤 해요." 


 집으로 가는 골목으로 향하려던 나에게 할머니도 한 말씀을 건네셨다. 


 "...... 나도 그래요.... 동물을 보호한다느니, 사랑헌다느니 그런 건 모르겠고. 총각, 나도 그냥 저 쪼꼬만 것이 그냥 어미 없이 굶고 있는 게, 그게 마음에 걸려서 그냥 밥 한 술 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 동네에 뭐 먹을 게 있나, 온통 빌라에 아파트에, 사람 사는 데밖에 없는데 저기, 날아댕기는 게 불쌍해서... 그래서 쌀이며 새 모이를 주고 말았네요... 배를 곯고 있는 거 같어서... 그게 넘 애리고 아파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주게 되네요... 미안해요 총각...." 

 "할머니, 괜찮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뭘. 그래도 동네 분들이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거는 아니신 거 아시죠?" 

 "..... 살아 있는 것들이 다 안쓰럽고 불쌍허고 그러네. 사람이고, 동물들이고 새들이고... 살아있는 게 왜 이렇게 근천스럽고 힘든지... 그냥 그래서 그랬는데.... 그게 또 그렇게 나쁜 짓이라고 허니.... 하지 말아야 하는데.... "


 할머니는 아주 잠시 말을 끊으셨다 이어가셨다. 


 "..... 그냥 다 같이 살다가 가는 법은.... 없는가 싶어서...."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줘서는 안 되는 이유도,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는 게 왜 민폐가 되는지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동시에 할머니가 무슨 마음으로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채우는지, 비둘기들한테 모이를 뿌리는지도 이해가 갔다. 논리적으로야 할머니를 설득할 서른한 가지의 이유가 있으나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또 지극히 감정적인 할머니의 선택 이유도 집요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 김밥 잘 먹을게요.... 고양이랑 비둘기 멕이다가.. 이렇게 나를 먹여주는 총각을 또 만났네... 고마워요.... 오늘은 편하게 자겠네....." 


 할머니는 김밥을 받아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셨다. 가로등 밑으로가 아니라 저기 어디쯤 사시겠구나, 싶은 빌라들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그 후로도, 할머니가 쥐어짜는 울음을 몇 번, 들었다.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사료 준다고 타박하는 아줌마, 아저씨의 고성도 몇 번 들었다. 노망 난 할머니가 하다 하다 비둘기들한테도 모이를 준다고 육두문자를 날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두어 번 들었다. 그날 밤의 대화 이후로 할머니를 다시 뵌 적은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식 앞세운 어미는 눈물도 사치지. 살아있는 게 죄여서 눈물도 안 나는 법이지. 나도 그 할머니가 울음을 쥐어짜는 걸 들으면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막상 또 나도 ㅁㅁ이 너나 니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나라고 다를까 싶다. 국가에서 연금도 좀 나오고 그러는 거 같은데도 배를 곯고 다니시는지 영양실조였다지 뭐냐. 동장이 뭐 줄 게 있어서 집에 들렀다가 기운 빠져 맥도 못 추고 있는 걸 발견했다더라. 병원에 실려가셨다가 어디 먼 친척이 요양원에 모시고 갔다고 하더라. 그 할머니도 참 불쌍하지. 병원 실려 가면서도 동장한테 방에 있는 사료 챙겨다가 고양이 밥 좀 먹여달라고, 가끔씩 비둘기들한테 모이 좀 뿌려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고 하더라고. 당신 몸도 제대로 못 챙기셨으면서... 그건 또 무슨 생각인 건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더라." 


 그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자식 앞세운 그 할머니의 얼굴도 목소리도 거의 다 잊었는데도 밤 중에 할머니를 만났던 일이며, 엄마를 통해 들었던 할머니 소식만큼은 꽤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당신 배고픈 건, 암시랑도 않다 여기시면서,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비둘기며 고양이들 배곯는 건 그렇게 안타까워하셨던 그 측은지심이 그리워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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