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을 건너기 위해 수 백 마리의 얼룩말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길을 떠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건너야 하는 그 강 밑엔 칼날을 숨긴 악어들이 숨을 죽이며 도사린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얼룩말들은 반드시 그 강을 건너야만 한다. 세차게 부딪히는 강줄기를 버텨내며 일부 얼룩말은 악어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벗어나지만, 운이 좋지 않은 얼룩말은 강 속에서 너무도 잔인한 최후를 맞이한다. 필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악어에 무차별적인 칼날에는 속수무책이다. 다른 얼룩말들이 강을 건너는 것을 그저 바라보며 차가운 물속에서 맞는 얼룩말의 마지막은 너무도 기구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을 것 같던 '보통날'이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 순간이다.
동료의 죽음을 뒤로한 채 강을 벗어난 얼룩말들도 마음에 큰 트라우마를 겪는다.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자신에게도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비극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평생 떠안아야 한다.
새로운 초원을 맞이하며 발을 내딛지만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뿐, 또 다른 포식자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겐 목마름을 축여 줄 강도, 풀숲이 우거진 초원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며,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 여길 정도로 이 세계는 냉정하다.
얼룩말에게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루하루가 유일한 목표겠지.
최근 신림역과 서현역 흉기난동, 신림동 강간살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원룸을 얻기 위해 지하철역 주변을 거닐던 청년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동네로 나온 어머니가,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여대생이,
학교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출근하던 교사가 겪어서는 안 될 끔찍한 일을 경험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지하철 역 주변, 백화점 주변, 산책 길에서 말이다.
평범하게만 여겨졌던 우리의 일상 공간이 어느덧 나일강이 돼버린 것만 같다. 묻지 마 범죄라는 비정상적이고 잔혹한 행위 앞에 그 누구도 보통날을 장담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국민들은 슬퍼하고, 분노하고, 또 불안하다. 지하철, 백화점, 동네 산책길 등 우리들의 일상의 공간 어디에서든 누구나 순식간의 흉악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걷고 있던 국민들의 삶은 크게 위축되었다.
나일강을 건너는 얼룩말처럼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생사를 다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어느 누군가는 이 비상식적인 사건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악어의 얼룩말 사냥 영상은 악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져 있는 게 대부분이다. 무서운 악어가 힘없는 얼룩말을 잡아먹은 것! 죽은 얼룩말의 가족이 이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조명해 주지 않는 듯 느껴진다.
흉기난동 사건도 마찬가지다. 파렴치한 일을 벌인 행위자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의 이름과 나이, 일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장 배경과 범행동기 등에 대해서는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그에 비해 평범한 가정의 부모가, 아들이, 딸이 당한 비극과 그로 인한 유족의 슬픔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한 듯 보인다. '은둔형 외톨이'와 '이상적인 행동'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가 가해자의 이야기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사이 피해자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유족들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주목받는 현실을 납득할 수 없다며 고인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공감은 남겨진 유족의 상처 치유와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되짚어 봐야 할 일들이다. 가해자의 사연이 알려져서 모방범죄를 부추기는 것보다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추모 움직임이 일어나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 이상 우리들의 '보통날'을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