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남이 Dec 24. 2023

아이들이 미디어를 끊은 이유

쿨하지 못해 미안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은 금요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유치원과 학원을 다녀준(?) 보상으로 저녁때마다 만화를 틀어주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허용하질 않으니 금요일이 오면 신이 나는 건 당연하다. 그날은 아이들이 등원할 때부터 이미 '불금'을 기대한다. 금요일 저녁이라는 여유 때문인지 나 역시 그날은 마음이 관대해진다. 아이들이 만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만화는 토요일을 거쳐 일요일 저녁까지 이어진다. 내일이면 다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걸 아는지 아이들은 주일 저녁에도 만화를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내는 날은 금요일이다. 평일은 바쁘거나 피곤해도 그럴 일이 없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이들에게 윽박을 많이 지른다. 만화를 보면서 그것을 중단하지 못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예상했던 결과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기회를 부여잡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절제력이 아직은 부족한 나이이기에 그것을 끊고 다음 주를 기다린다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니겠지. 품위 있게 끝내고 싶지만 늘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는 결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 금요일 저녁, 아이들이 여느 때와 같이 만화를 보고 있다. 당장이라도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말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깨달아진 게 있다. 화를 일으킨 주범은 바로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아이들이 미디어를 보는 것이 싫어서, 그것에 노출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 언제부턴가 아이들을 위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때만큼은 자유롭고 싶어서, 내 한 몸 편하자고 아이들을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에 빠지게 했던 일종의 무책임함과 죄책감 같은 것들이 몰려왔었나 보다. 그러한 불편한 감정들이 뒤섞여 아이들에게 괜한 신경질을 부렸던 것이다. 쿨하게 허용해 놓고 쿨하지 못했던 아빠. 아이들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얼마 전, 딸아이와 같이 문방구에 갔다.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는 대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겠노라 약속하고 공책 몇 권을 같이 골랐다. 동화책을 더 많이 읽어주고 함께 일기도 쓰기로 했다. 한 주간을 지내며 들었던 감정도 소소히 나누기로 했다. 만화를 보지 못하는 허전함은 있겠지만,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옥신각신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사랑할 시간도 없는 요즘, 자그마한 집 안에서 서로를 더 돌봐주기로 했다. 우리들에게 이제 신나는 금요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행복한 날은 매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디어를 끊은 지 약 한 달이 되어간다. 아이들은 몰라보게 변해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Father's lov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