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 <Zip> 앨범 리뷰
자이언티가 정규 3집 [Zip]의 발매와 함께 돌아왔다. 단촐하지만 유니크한 앨범 아트와 함축적인 의미가 담 긴 듯한 앨범 제목은 재생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호기심을 자극한다. 데뷔 12년차, 그간 촘촘하게 쌓아 올 린 그의 감정들이 소담한 앨범 안에 담겨 있다. 알앤비, 재즈, 소프트 팝 등의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들로 구성된 이번 앨범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랑하는 누군가와 편안함을 나누는 듯한 전개 방식으로 진행된다.
Intro 트랙인 ‘How To Use’는 ‘물건을 사면 이런 게 들어 있지, 친절한 사용 방법이 적힌 Paper’라는 가 사처럼 앨범의 친절하고 따뜻하게 앨범의 사용법에 대해 노래한다. 이는 흡사 그의 전작인 ‘꺼내 먹어요’와 같은 서술법이다. 부드럽고 재지한 선율 위로 특유의 리듬감 있는 아카펠라가 생활음과 어우러지면 비로 소 [Zip]의 현관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2번 트랙인 ‘UNLOVE’는 일렉트로닉 듀오 HONNE(혼네)가 참여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을 SNS 플랫폼 게시 글의 하트를 지우는 데에 비유한 곡으 로, 담백한 멜로디 라인의 반복이 단조로움 끝에 권태를 맞이한 사랑의 결말을 그린다. 쓸쓸한 가사 사이 날카롭게 스미는 일렉 라인은 불쑥 스미는 회상이 된다. 3번 트랙인 ‘모르는 사람’은 집시 기타 풍의 음악 위로 모르는 그 사람에 대한 소상한 마음을 역으로 발화하며 그리는 모순을 매력적으로 노래한다. 이밖에 도 트럼펫 연주자 Benny Benack III와 함께한 재지한 바이브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 AKMU와 함께한 위트 있는 일본어 가사가 돋보이는 시부야케이 장르의 ‘V(Peace)’,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고, 팔 수 없다 는 다정한 고백을 담은 ‘NOT FOR SALE’, 희미하고 아득한 독백 형식의 Interlude 트랙 ‘투명인간’, 윤 석철의 담담한 피아노 선율과 그 위로 어우러지는 목소리가 인상적인 발라드 ‘불 꺼진 방 안에서’, 사랑하 는 여자의 웃음 소리를 높은 돌고래의 주파수에 빗댄 달콤한 ‘돌고래’, 마지막으로 제목처럼 트랙과 트랙 사이 거리를 빼곡하게 채우며 달린 앨범은 마침내 다다른 ‘해피엔딩’으로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일.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지난하고 지겨운 일 상을 살다 보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파도에 모서리가 무뎌지는 몽돌처럼 감정이 뭉툭해지면 무엇에 도 감동하기 힘든 로봇이 되는 듯하다. 아무래도 시시콜콜한 이벤트 하나하나에 감정을 소모하며 살기에 는 영 빡빡한 사회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메마른 마음에 단비를 촉촉히 적셔 주는 이 앨범의 효능감이 얼마 나 대단한 것인지 트랙 리스트를 유영하다 보면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말랑해진 마음에 세밀하고 섬세하게 스미는 가사는 분명 확실한 위로가 될 것이다. 트랙의 열 곡 중에 한 곡이라도 데리고 키울 만한 노래가 있기를 바란다, 는 앨범 소개 속 문장은 이토록 겸손하고 소박할 수가 없다.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 모든 이에게 심심한 응원으로 이 앨범의 첫 트랙을 재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