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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opepperzzang Feb 17. 2024

삶과 죽음, 마침내 시작된 탄생

멜라니 마르티네즈 <PORTALS> 리뷰


R. I . P CRYBABY. 깊고 어두운 숲속 가운데 자리한 비석 위 선명하게 새겨진 글씨가 보인다.  발매 전 멜라니 마르티네즈의 SNS 채널들을 통해 공개된 이 숏폼 비디오는 4년 여 간의 공백 을 끝낸 멜라니 마르티네즈의 신호탄이다. 크라이 베이비는 멜라니 마르티네즈가 2015년에 발매한 데뷔 정규 앨범 <Cry Baby>에서부터 시작된 멜라니 마르티네즈의 음악적 페르소나 다.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한 감성의 로리타 양복 차림, 러블리한 헤어 스타일의 소녀는 달콤 하고 몽환적인 멜로디에 조금은 섬뜩한 가사를 얹어 잔혹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히 3부작 연출이라고 하는 방식을 통해 1부 <Cry Baby>는 크라이 베이비 개인의 서사에 집중 하고, 2부 <K-12>에서는 크라이 베이비가 학교를 다니는 모습을 노출한다. 멜라니 마르티네 즈가 직접 연출한 단편 영화도 이의 한 구성이다. 


그리고 크라이 베이비의 마지막, <PORTALS>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PORTALS>의 단초는 생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는 멜라니 마르티네즈가 직접 언급한 바와 같이 육체는 죽었으나 영혼은 불멸한다는 믿음에 서 기인한다. 앨범의 트랙들은 기존 방식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공개된 <DEATH>는 멜라니 마르티네즈가 직접 연출한 뮤직 비디오와 함께 공개됐다. 아득 히 들려 오는 독백과 태동하는 심장 박동 소리로 포문을 연다. 탄생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언 뜻 찬송처럼 성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I’m back from the death’라는 가사처럼 죽음 후 다시 태어난 크라이 베이비는 인간이 아닌 형태를 띄고 있다. 이는 멜라니 마르티네즈가 생각하 는 영혼 그 자체의 순수함을 표방한다. 분홍색 피부와 네 개의 눈, 그로테스크하지만 묘하게 사랑스러운 비주얼의 요정은 크라이 베이비 3부작을 마무리 지음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선포한다. 얼터너티브 록 장르를 베이스로 웅장하게 깔리는 신디사이저와 보컬 튠들은 차곡 차곡 쌓여 그런지(grungy)한 포효를 만들어 낸다. 더해지는 드럼과 일렉 사운드는 멜라니 마 르티네즈 세계관의 핑크빛 디스토피아를 뒷받침하는 정서가 된다. 어딘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 가는 사운드를 끝으로 홀린듯이 트랙을 넘기게 된다. 


이어지는 <VOID>는 영혼 내면 깊은 곳의 공허함에 집중한다. 이는 요즈음 시대의 자기 성찰 과 혐오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허나, 도망치려는 자가 스스로 만든 감옥임을 깨닫고 절규 한다. <TUNNEL VISION>은 <PORTALS> 앨범의 정체성을 방증한다. 순수한 영혼이 되어 내면을 노래하는 모습은 찬송을 연상케 하고, <FAERIE SOIREE>와 <LIGHT SHOWER>는 정화 되는 영혼의 순수함을, 사랑을 코어로 한 인류애로 성장한다. 초반 멜라니 마르티네즈가 추 구하던 어쿠스틱한 음악의 컬러와도 연결되어 있다. <SPIDER WEB>와 <THE  CONTORTIONIST>는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어 사회 이슈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멜라니 마르티네즈의 가치관이 담겨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MOON CYCLE>,  <NYMPHOLOGY>, <EVIL> 등의 음악을 통해 전작인 크라이 베이비의 여성적 서사를 이어 나감과 동시에 내면의 고뇌를 통해 세상이 정해 둔 구속에서 탈피하려는 몸부림이 느껴진 다.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고 있는 <WOMB>은 탄생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 는 결국 끝이자 처음을 의미한다. 


몽환적인 보이스와 추상적 가사, 그에 걸맞는 비주얼라이징은 신선하다 못해 알싸한 충격을 선사한다. 하나의 우주처럼 전체를 아우르며 자전하는 트랙은 크라이 베이비의 페르소나를 빌려 말하고 있지만 사실 한 영혼의 메타에 관한 이야기이며, 곧 감정의 코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앨범 말미에 깨닫게 된다. 이 세계 너머 속박 없는 세상만이 음악적 유토피아는 아니겠지만, 그로 인해 한 층 더 순수해진 세계를 맛볼 수 있음은 틀림없다. 하나의 삶이 피어나고 지는 과정 이후 다시 등장할 그녀의 무궁무진함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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