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거 좋데. 이거 조금만 담아봐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조금은 늦어버린 대학교 졸업 준비와 또 병행해야하는 취업준비로 바쁘게 살다보니 그 생각은 점차 의식속에서 희미해져만 갔다.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을 통해서 들어오는 돈은 부족한 생활비를 메꾸는데 급급했고, 그럴수록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생활만을 벗어나고자 공부를 하는데 이를 악물었다.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공부도, 생활도 제대로 되지 않는 타지생활을 정리하고 과감하게 부모님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은 잘왔다며 반겨줬었지만, 사실 마음은 늘 편치 않았다. 서른 살이 곧 다가올 나이에 다시 본가행이라니. 다른 의미로 참 끔찍했다. 그래서 단 하루도 허투로 보낼 수 없었고, 공부와 더불어서 운동도 아주 열심히하며 취업준비에 나섰다.
결과는 좋았다. 그리 길지 않은 취업준비 기간을 거쳐 나는 당당히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부모님도 참 좋아라하셨다.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한턱, 두턱 열심히 쏘고 다녔다. 그렇게 입사일을 기다렸다. 아, 이제 돈에 시달리는 생활은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어느덧 그 회사생활에 적응해버렸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친해진 선배들이 있다. 선배들은 비교적 이 회사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급여나 복지 같은 부분에서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직장을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이 선배들과 친해진 나는 회사에서 마주치는 것 말고도 그 외적으로도 취미같은 것들을 공유했다.
어느 날 선배 중에 한 명이 나에게 주식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다. 군대 첫 휴가를 나갔을 때 당찬 포부로 주식계좌를 열었던 기억은 있었지만, 단 한번도 주식을 사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 나는 주식과 재테크에 관한 문외한이었다. 그런 나에게 선배의 '이거 좋데. 이거 조금만 담아봐'라는 말은 참 매혹적으로 들렸다.
이제 학생 때처럼 돈에 그렇게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여윳돈도 조금 있으니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주식계좌를 개설하고 예수금을 입금한 뒤, 아무런 생각도 연구도, 공부도 없이 선배가 추천해준 그 종목을 샀다. 무려 백만원! 당시 나에게는 제법 큰 돈이었다. 문제는 매수를 하고 난 뒤부터 시작됐다.
백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투입한 나는 단 한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분 단위로 주식 어플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도무지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파랗게 변하면 돈을 더 넣어야 되나 싶었고 빨갛게 변하면 지금 얼른 팔아치워야 되나 싶었다. 고작 돈 백만원에 나는 스마트폰에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내가 산 주식이 평소에는 보지 못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빨간색 불기둥이 솟구쳤다. 당시 나는 천안에서 교육을 듣고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교육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불기둥 쇼'는 거의 3일 이상을 반복했으며 나는 그때 처음으로 투자에 대한 희열을 느꼈다. 참 어리석게도 말이다.
단순히 남이 사라고 해서 샀던 주식을 하루가 멀다하고 쳐다보기만 했는데 돈이 불어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내가 주식을 참 잘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그 이후로 내가 사는 주식 종목들마다 아주 괜찮은 수익을 내었다. 뉴스와 신문에서 대북주가 좋다고 하면 대북주를 사고, 정치이슈가 온 세상을 덮고있으면 정치주를 샀다.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이 몰리고 주가가 오르는 것만이 나의 관심사였다.
처음 주식을 권했던 선배는 나에게 계속 주식을 잘한다며 시드를 키워보라고 했고, 속으로는 '아, 그래도 뭔가 불안한데' 하는 마음이었지만, 겉으로는 "아, 당연하죠"라며 주식고수의 행세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채 시작했던 주식인데 어느새 나는 '고수'라며 거들먹거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늉도 그렇게 오래가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