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분은 언제 돈이 필요하다 느꼈나요?
시골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난 나에게 '돈'이라는 것은 필요하긴 했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군것질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과자나 음료수, 혹은 분식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크게 용돈이 필요하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돈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몇 가지 생겼다.
첫 번째는 'PC방의 유행'이었다. 1999년 정도에 우리 동네에 PC방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다. 부모님께서는 나와 형이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서 뒤쳐질까 싶어 당시 가장 좋은 컴퓨터를 사주셨었다. 물론 넉넉치 않은 형편이었지만 우리 형제는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C방이 생기면서 나는 집에서 컴퓨터를 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우르르 '그곳'을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PC방에 가려면 '돈'이 필요했다. 당시 한 시간 PC사용요금은 1,500원. 추후에 1,000원까지 요금이 내려갔지만, 기껏해야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참 버거운 요금이었다. 나는 매월 받는 용돈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필요하면 부모님께 말해 조금씩 돈을 받아 사용하였는데, 매번 PC방을 가겠다고 돈을 받기엔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가 아마 처음 내가 돈이 많았으면 하고 생각한 시기였다.
두 번째는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일이다.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었지 싶다. 주말에 학원에서 기말고사 대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학원 안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 누나가 나에게 다가와서 슬쩍 말을 걸었다. "시옷아, 혹시 아직 소식 못 들었어?"
소식인즉, 형이 대로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크게 났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휴대폰도 없었고, 부모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을 만한 수단 자체가 없었는데 일단 그 소식을 듣고선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용케 집에서 어머니와 마주쳐서 같이 부산에 있는 큰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사고난 형의 모습을 보았는데, 정말로 사고가 크게 났던 것인지 나는 형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형의 기다란 몸은 피투성이가 된 채 침대에 그져 얹혀져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간호사가 오더니 형의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며 형의 옷을 가위로 슥슥 자르려는데, 그 순간 엄마가 옷을 꼭 잘라야되냐 물었다. 간호사는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 옷은 형이 시험 끝난 것을 기념해서 바로 전날에 사왔던 '백화점 신상' 옷이었다. 심지어 내 옷은 사지 않았기에 나는 조금 심통이 나있던 상태였는데, 엄마의 그런 말을 듣고선 없는 가정형편에 형 옷을 백화점에서 꾸역꾸역 사온 엄마의 사정이 생각이나 괜히 서러워졌다. 그 옷을 자르게 만든 형조차도 서럽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형은 몇 달간의 병원 생활을 했고, 크고 작은 수술들을 끊임없이 받아야만 했다. 그 즈음부터였다. 나는 엄마에게서 용돈을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어린 내가 생각해봐도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왔을 것이고, 당연히 가정형편은 더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학교-집만 왔다갔다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래야 용돈을 받지 않고도 지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세 번째는 앞서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듯, 아버지의 은퇴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그다지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분명 본인들은 덜 쓰더라도 자식들에게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한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가정의 최전선에서 열심히시던 아버지의 은퇴를 바라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버지의 답안지는 틀리진 않았지만, 다른 답을 낼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이래저래 돈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느낀 계기는 많았다. 하지만 지금도 되돌아보면 필요성을 느끼고 '아,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연신 한탄을 내뱉을 뿐 인생이 바뀔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죽하면 어느 자기계발서에서 이렇게 써놓은 문구도 보았다.
'근데, 어차피 안할거잖아?'
나도 그랬다. 늘 복권에 당첨됐으면 했고, 심지어는 부모님에게 숨겨둔 재산이 있길 바랐던 적도 있다. 모두 내 노력은 하나도 가미되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망상일뿐이었다.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천한 것은 서른살이 훌쩍 넘어버린 어느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