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현재 회사원으로, 남들과 비교하자면 그 누구보다도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살고 있다. 아주 스무스하게 직장에 합격하고 자연스럽게 연애하다가 결혼을 했고, 귀염뽀짝한 네 살배기 아들도 하나 있다. 모나지 않았다. 어느 부분이 툭 튀어나왔다거나 뭐하나 특별하지도, 빼어나지도 않았다. 보통의 집안과 보통의 외모, 그리고 보통의 능력까지.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 중 대다수는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본인들의 어떠한 것들과 비교해봤을 때 내가 낫다거나 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여 나타난 상대평가에 불과하다.
나는 한때 바랐었다.
'아버지처럼, 아버지만큼만! 보통 혹은 그 이상의 삶만 살아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삶을 따랐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참 성실하고 부지런한 분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을 떠 올려보면 늘상 새벽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서예를 하셨다. 어렸을 때는 늘 생각했다. '왜 피곤하게 새벽마다 저러실까?','저런다고 뭔가가 달라지나?' 현재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는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책보기, 운동하기, 명상하기 등등. 결국은 보고자란 것들이 그대로 몸에 체득이 되었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는데, 많다면 많은 독서와 깊다면 깊을 사색을 통해 야트막한 어떤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대로의 삶에 만족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다면 아버지처럼, 아버지만큼만의 삶을 이루게 해달라는 어렸을 적 나의 바람은? 지금까진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루어질 것도 같다. 물론 내가 지금의 삶을 무난하게 계속해서 영위해나간다면 말이다. 현재까진 크게 흔들릴 것 없는 안정적인 직장, 그럭저럭 화목한 가족, 원만한 인간관계. 뭐하나 아쉬울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저 질문에서 내 생각은 벗어나질 못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 아버지의 은퇴시기즈음에 문득 질문이 떠오른 뒤로 사라지질 않았다.
아버지는 30년을 넘게 한 직장에서 일을 하셨다. 지금 세대에서는 꿈도 못 꾸는, 엄청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의 직장생활 막바지 즈음에는 늘 힘이 넘쳤다. 평생을 들여다 본 분야에서 말 한마디면 탁탁 해결되는 문제들, 그리고 많은 부하직원과 제법 쏠쏠한 월급. 내가 본 아버지는 참 당당'했었다'.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나는 취업준비를 할 무렵에 앞에서도 말했듯, '아버지만큼만'을 외쳤다. 하지만 내가 미쳐보지 못한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아버지가 은퇴를 하고난 시점에서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늘 커다래보였던 아버지의 덩치는 생각보다 외소했고, 왠지모르게 말투에도 힘이 없으신 듯 했다. 직장생활에서와는 달리 이제는 다달이 들어오는 부쩍 줄어든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점과 평생을 가지고 다닌 '소속'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평생을 달려오셨다. 하지만 내가 목도한 은퇴이후의 삶은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아보였다.
나를 비롯한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생각보다 준비되지 못한 넉넉치 못한 당신의 경제적 노후생활과 발붙일 곳이 사라져버린 공허함은 그 깊이감이 더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처럼, 아버지만큼만? 보통 혹은 그 이상의 삶만 살아가게 해주세요?'
내가 바랐던 것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붙이기 시작했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온 아버지시지만, 가족을 위해 늘 희생하신 아버지시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흘러오는 대로만 계셨던 것은 '팩트'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왔지만, 이제부터의 길을 내가 개척하는 것으로 말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그래서 무작정 많은 책들을 읽었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어느정도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먼저 '돈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모건 하우절이 쓴 '돈의 심리학'에서는 내가 아주 좋아할 문구를 써놨다.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은 네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네가 원할 때, 원하는 일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만큼 오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고가의 물건이 주는 기쁨보다 더 크고 더 지속적인 행복을 준다."
아버지를 넘어서는데 있어서 이 이상의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어찌됐건 무작정 나는 투자라는 것을 시작했고, 어긋나게 방향타를 잡았지만 어느정도 맞춰가고 있는 과정이다. 내가 쓰는 글들이 누군가에겐 한심하고 어리석은 실패담일 수도, 혹은 누군가에겐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지가 쓴 병영일기 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읽히든지 상관은 없다. 다만, 스스로 쓴 글로써 이리저리 키를 잘맞춰가는 것으로 만족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