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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비읍 Dec 09. 2019

서울 속 조선의 멋, 한국가구박물관

essay 002

안채의 창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서울 시내가 창문 프레임 안에 펼쳐졌다. 


성북동에 가면, 궁궐같이 크고 멋진 집들에 놀라게 된다. 북악산을 뺑 둘러 올라가는 택시에서는 기사님의 인맥 자랑쇼가 있었다. ‘하얀 지붕 벽돌집은 OO 회장님 큰 딸네 집, 지하 4층까지 있어’, ‘저기 저~기 보이는 집은 탤런트 OOO 집’. 나와 J는 방청객이라도 된 것 마냥 연신 감탄을 했다. 궁금했다. 당장 저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다. 언제쯤 궁궐 같은 집에 가볼 수 있을까? 


성북동에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이 딱 한 곳 있었다. 게다가 여기는 성북동 내에서도 가장 좋다 하는 위치에 지어진 집이라 서울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성북동 가구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제일 처음 보이는 바깥문을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평화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예약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한 후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가구 박물관에 가려면 투어를 예매해야 한다. 1인 2만 원. 영어/한국어 선택 가능). 그렇게 티켓까지 받고 난 후 시간에 맞춰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집을 둘러볼 수 있었다. 



먼저 본채를 둘러 있는 마당부터 투어가 시작된다. 돌에 크게 구멍을 내어 만든 불로문을 지나면 서울 전경을 볼 수 있는 탁 트인 마당이 나온다 (이 문을 지나면 늙지 않는다고 한다는데 그건 좀...)  마시면 눈이 뜨인다는 실로암 샘부터 내부 난방을 위한 전통 굴뚝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잠시 투어를 멈추고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쉬었다.  가구 박물관에 들어선 지 10분 만에 지하철을 가득 메운 바쁜 사람들, 빵빵거리는 차들로부터 멀어져 그 풍경을 관조하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내부 구경도 흥미로웠다. 사진을 찍을 순 없었지만 시대별로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상, 의자부터 재떨이까지 과거 선조들이 얼마나 실용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집에 놓아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세련되고 탐나는 가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가구들을 쭉 구경하고 나면, 실제로 선조들이 지내던 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다른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뭐 기운이 잘 통해야 하기 때문에 가구들은 다 사람의 선 키보다 낮고, 혹시라도 큰 가구들은 꼭 구멍이 뚫려있다든지... 그러나 나에게 와닿았던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가이드분께서 좌식 생활에 맞춰져 있는 이 집을 제대로 즐기려면 앉아서 감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창문을 활짝 열었고, 모두가 감탄했다. 안채의 창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서울 시내가 창문 프레임 안에 펼쳐졌다. 숨통이 트였다. 따뜻한 방안에 퍼져 앉아 눈으로는 넓디넓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여긴 더 이상 현생이 아니다.’ 라는 착각이 들었다. 



몸소 여유를 몇 분 더 즐기다 다시 내려오는 택시를 탔다. 이번엔 성북동 집들을 열심히 소개해주던 택시 기사님은 아니었지만, 내려오는 예쁜 집들을 보면서 또 연신 감탄을 하면서 몇 분간의 여유를 좀 더 즐겼다. 정말 꿈같은 곳, 꿈같은 시간이었다. 여유가 뭐였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곳을 방문해 보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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