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멀리서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아직 눈앞이 흐려 초원인지 사막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추락하는 무언가. 왼쪽과 오른쪽을 지그재그로 날며 점점 지면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기체는 충돌했고 고장 난 프로펠러가 마찰을 일으키는 바람이 이내 잦아들었다. 나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 전방에서 노랗고 빛나는 것이 기어 오고 있었다.
“뱀?”
그것은 매우 느리게, 느리게 기어 왔다. 다가올수록 하얗게 빛나며 더 속도가 느려진 그것은 내 발 밑까지 와서는 털썩, 모든 중력을 땅 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고개만을 조용히 들어 빨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같은 애가 이 광야에는 웬일이지?”
숲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저 멀리, 연기가 나는 곳이 아마 기체의 충돌지점일 것이다. 그 주변에 우거진 숲이 보였다. 손바닥 몇 뼘으로 물러간 거리였을 뿐인데, 뱀은 더 천천히 기어 왔었는데. 어느덧 그곳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나는 경계를 세우며 그 뱀을 노려보았다. 뱀의 눈이 붉게 변했다.
“너 말을 못 하는구나.”
나는 계속 그 뱀을 노려보았다. 뱀이 말했다. “너, 듣지도 못하는구나. “
너는 지금 그 눈으로 나를 읽고 있구나.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은 마치 물에 젖은 종이를 씹는 느낌이었다. 뱀은 어디 한번 해 보시지, 하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점점 옅어졌고 프로펠러도 이내 멈췄다.
-LIE-
진부한 시작이지만, 나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어부의 자식이야. 아버지는 고기잡이로 번 돈을 술집과 노름에 모두 탕진해 버렸어. 나는 홀로 어머니를 도와 소일거리를 하며 지냈어. 어머니께서는 늘 배가 고프셨지. 나도 배가 고팠어. 아버지는 그렇게 혼자서 먹고 마시고 즐겼어. 원망스러웠지. 그래도 상관없었어. 그는 우리를 책임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해치지는 않았으니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그는 우리를 해치지는 않았다고 말이야. 그는 그가 열심히 일한 돈을 그를 위해 썼을 뿐이겠지. 그래서 나 역시 그렇게 다짐했어. 어머니와 나는 알아서 살아보겠다고.
그런데 어머니가 포도밭을 하나 샀어. 농사를 지어서 세 식구 같이 먹고살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날 어머니가 죽었어. 아버지가 죽였어. 그래서 나도 그를 죽여버렸어.
나는 아버지의 고깃배를 가지고 멀리 도망갈 생각이었어. 그런데 배가 없는 거야! 왜 없는지 모르겠어. 그 배가 어디로 갔을까? 그 어떤 것도 이해가 안 돼! 나는! 대체!
내내 빨갛던 뱀의 눈은 갑자기 옅은 분홍으로 변했다. 등 뒤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이 한낮이 아니란 말이야?
등이 타는 듯한 작열감에, 일어나 걸음을 떼었다. 그랬더니 불쑥, 숲에 들어와 있었다. 뱀의 핏빛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리고 내 귀를 한번 날름 핥고는 다시 나의 정면을 응시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읽었다.‘
“너는 뭘 모르고 있어? 넌 무슨 벌을 받다가 여기에 온 거지?”
나는 소리 없이 하늘을 응시했다.
파랗고 탁 트인 새벽. 이런 새벽이 열리는 곳에 나는 왜 왔을까.
“나는 여기가 처음이 아니야. 그리고 날 두 번 본 사람은 없어. 내가 다 죽여버렸으니까. 나한테 그 배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못하잖아.”
해가 더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 이건 뭔가 잘못됐다. 이건 아침이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아까 추락한 기체가 터지고 있었다. 사방이 점점 불바다가 되어갔다.
모든 것이 타고 있다. 새벽이 바스러지고 있다.
이 숲 밖의 것들이 모두 타 죽었다. 나와 뱀을 제외하고.
확실히 보았다. 이곳은 초원도 사막도 아닌, 지옥이다.
뱀은 가장 습한 곳으로 가 똬리를 틀고 누웠다. 그 눈은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