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

장미

by 백설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사방은 안개투성이었다. 쓰디쓴 바람이 불어왔다. 눅진하고 텁텁한 기류. 불의 아침은 짧았다.


느닷없는 어둠이 깔렸다. 나뭇잎들이 움찔, 하더니 비가 마구 쏟아졌다. 안개는 순식간에 걷혔다. 비에 젖은 장미향이 흘러들어왔다. 사방이 점차 투명해졌다.

뱀은 핏빛 동공을 넓힌 채 내게 기어 왔다. 왜 저리도 저 뱀은, 붉은 눈을 뜨고 있는 것일까. 눈을 질끈 감았다. 뱀은 내 발목을 스르르 감고 가슴께까지 올라와 지루한 듯 속삭였다.




"그 배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대답하지 않으면 죽인다."









Truth



검은 물속에서 사내아이의 얼굴이 번뜩, 솟아올라왔다. 남자는 서둘러 갑판 위로 아이를 들어 올렸지만 아이는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남자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여자의 붉은 옷은 너울거리며 남자를 방해했다. 남자는 방울방울 여자에 대한 미련을 뱉어내다가 여자의 옷자락을 쥐었다. 그물은 여자의 옷자락을 움켜쥐었지만, 여자는 나신이 되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남자는 여자의 옷과 함께 그물에 걸린 채 배의 밑동을 바라보았다. 가시도 없는 몸이 그물에 걸려, 식물처럼 뻣뻣해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에 빨강이 일렁였다. 남자는 와르르, 마지막 미련을 뱉어내었다.


홀로 살아남은 아이에게 돌이 날아들었다. 찢어진 눈가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툭, 툭. 사막에 봉오리 진 장미가 떨어지듯. 아이는 젖은 몸을 떨었다.


차가운 사막의 마을에서 아이는 느닷없이 굶어 죽었다.


포도밭주인은 남자의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급류에 휘말려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 배는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튀었다. 그중 한 조각을 타고 왔나 봐, 나는.


그 배를 찾으면 될 줄 알았는데, 다 사라진 거구나.


내가 안 그랬다는 걸 어떻게 말해? 배가 없어졌잖아.

이제 나는 어떡해?






어둠은 짙어지고 있었다. 어느덧 지옥의 낮.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맹수들인가.



뱀의 꼬리는 짧아지고 있었다. 머리는 둥글어지며, 붉은 눈은 말갛게 색이 바래어 희어지다가 녹빛이 되었다. 꽈, 꾸. 어려진 뱀이 울었다. 발등 길이만큼 작아진 뱀은 똬리를 틀고 쌔액쌔액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 여길 떠나자.



뱀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꽈, 꾸. 뱀이 울었다.



여기에 온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뱀은 더 작아져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그를 올려둔 채 그러쥐었다.


삐엑-

뱀은 금빛 거품과 장미향이 되어 사라졌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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