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늑대

by 백설

장미향은 숲 속 곳곳에 배어 허공을 울리고 있었다. 땅의 진동도 서서히 숲과 가까워졌다.


검은 물감이 떨어져 내릴 듯 짙은 어둠이 깔린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이 하늘을 매만지고 있었다. 바람이 꽤 불고 있는지 습기가 가시면서 한기가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더니 금빛 거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뜨거운 아침이 갔다.

축축하고 흐린 오전의 후반부도 지나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캄캄한 낮이 왔다.


이 숲의 모든 소리는 빛깔과 흔들림으로 다가왔다. 이 낮고도 불안정한 진동은 맹수의 것이리라. 이것들은 숲으로 들어오려는 것일까, 혹은 숲에서 나오는 것들을 노리는 것일까.


가까워지고 또렷해지는 떨림. 풀과 흙을 훑어 냄새를 맡는 듯한 날카로운 움직임. 나는 조심스럽게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키의 두 배쯤 올라왔을 때, 나무의 꼭대기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엄청난 강풍이었다. 나뭇잎에서 우수수 얼음덩어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팔뚝과 어깨를 스치고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옷이 찢어지고 긁힌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크르릉-


피 냄새를 맡은 것인가. 진동은 점차 더 강해졌다. 나는 허둥지둥 급히 나무를 탔다. 손바닥과 종아리는 나무껍질에 긁혀 생채기가 났다. 오로지 바로 위만 보면서 떨어져 내리는 얼음조각들을 피해 오르고 또 올랐다.

나무의 색깔이 변한 곳에서, 나무는 가늘어져 가지를 꺼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눈발과 함께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두두두두둑. 나뭇잎에 어깨를 숨기고 가지 위로 걸터앉았다. 눈보라와 함께 얼음바늘이 날아들었다. 왼쪽 발목에 얼음바늘이 촘촘히 박혀 파고들었다. 나는 비명을 참으며 바늘을 뽑아 던졌다.


크릉 -


한 차례 더 진동이 울렸다. 나는 다시 나무의 색깔이 창백하지 않은 곳으로 내려왔다. 숲의 천장에 겨우 갈라져있는 나뭇가지를 찾아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정수리 바로 위로 얼음비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다본 숲의 반경은 생각보다 작았다. 사방에서 늑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맹렬히 이 숲을 향하고 있었다.


지옥의 낮이 얼어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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