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이와 나

by 백설

햇살 같은 미소를 띠고 누구에게든 인사하는 너.

잿빛 무표정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나.


덥석덥석 그날 나온 초콜릿우유나 딸기우유를 안겨줬던 너.

매점이나 슈퍼에는 가지도 않고 단 걸 싫어했던 나.


히히 웃으며 말을 걸고 실없는 얘기를 서슴없이 했던 너.

할 말을 몇 번이고 곱씹고 정리해서 뜸을 들인 후 한두 마디 했던 나.


갈색 곱슬머리를 여며 묶고 갈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던 너.

새까만 직모를 빨갛게 염색하고 슬리퍼에 기장이 긴 교복 치마를 입었던 나.


성적이 나쁘면 몸을 떨며 엉엉 울었던 너.

일부러 OMR에 줄을 세우며 시험을 망쳤던 나.


노래를 너무 잘했지만, 피아로는 못 쳤던 너.

노래를 시키면 도망가 버렸지만, 피아노는 종종 사람들 앞에서 쳤던 나.


멀리뛰기와 마라톤을 잘했던 너.

체육 시간이면 교실에 격리되어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봤던 나.


맥주 한 캔에 취해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외치라고 한 너.

소주 다섯 병에도 멀쩡해 너를 업고 집에 데려다준 나.


친구도, 아는 사람도 많았지만 내가 다른 친구랑 말하면 질투했던 너.

더벅머리 햇살처럼 시끄러운 너를 귀찮아하면서도 네가 다른 친구와 어울리면 가슴 깊이 서운했던 나.


항상 먼저 끌어당겼고 다가왔던 너.

항상 기다리고 지켜봤던 나.


편지하는 사이는 싫다며 엉엉 울던 너.

악수를 청하며 자주 편지하자, 인사했던 나.


금방 잊고 연애하고 대학 생활에 푹 빠져든 너.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몇 년을 겉돌며 침울해했던 나.


항상 생일 선물을 먼저 챙겼던 너.

먼저 생일 선물을 보내지 않게 된 나.


그렇게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너와 나.




2001년 여름의, 빛나고 그늘졌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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