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마음은 여전히 차갑다. 이 차가움은 별 것이 아니다.
늘 그 차가움을 마시며 사는 사람에게는 크림라테 같은 달콤함일 뿐이다.
나는 차가운 마음이 열정의 씨앗이라 생각지 않는다.
열정은 열정이고, 냉정은 냉정이다.
차갑다는 것은 끓어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다에 용암이 닿는다 하여도 바다는 타버리지 않는다.
지구의 내핵에 뭉쳐있던 열기는 외핵으로 올라서야 흐른다.
뜨겁고 경솔한 슬픔이란 것은 없다. 그것은 매우 경박한 정의내림이다.
청명한 한기를 아무 곳에서나 퍼온 미지근한 흙으로 덮어 묻으니,
슬픔이 능멸당하고 우스운 꼴이 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시간문제라고 말할 틈도 없이, 그것이 우려 섞인 주제로 떠오를 틈도 없이.
슬픔은 무정하며, 분노는 유정하다.
슬픔은 근본이며, 분노는 파생된 것이다. 이것들이 같을 수 있는가? 화염수작, 하극상이라는 이치를 거스르는 철학에서 나온 발상이다.
슬프기 때문에 화를 낸다는 것은, 근본을 파생이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다.
슬픔에 집중하면 분노는 속절없이 꺼진다.
슬픔이 분노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은 배려를 하는 것이다. 분노는 배려를 할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