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13
1. 모세혈관이라고 하니 성경에 해박하신 분들은 모세의 혈관 (Moses' blood vessels)이라고 여기는 분도 혹시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모세혈관은 (毛細血管, Capillary vessels)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혈관이라는 의미로서, 동맥에서 정맥으로 넘어갈 때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아주 가느다란 혈관을 말한다.
모세혈관의 혈관벽은 세포 한 겹 정도의 두께로 되어 있어서 산소와 영양분이 주변의 세포로 언제든지 잘 투과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내부의 직경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굵기이다.
이는 약 8 마이크로미터(µm)로서 보통 머리카락 굵기의 약 1/10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는 모세혈관이 활짝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도넛처럼 생긴 적혈구가 반쯤 접혀서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추운 날 손발이 차가워지거나 손가락 끝 피부색이 하얗게 변하는 것도 모세혈관이 수축되거나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겼다는 표시들이다. 약수터에서 어르신들이 혈액순환이 좋아지라고 손바닥을 앞뒤로 번갈아 손뼉을 치는 이유도 모세혈관을 넓게 만들고 혈액량을 늘려서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하려는 노력들이다.
2. 쨍한 햇볕이 좋은 가을날, 햇빛에 투명하게 빛나는 잎사귀를 보고 있자면, 촘촘하고 섬세하게 퍼져 있는 잎맥을 따라서 나무의 수액이 잎사귀 세포 하나하나에 전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잎사귀는 수많은 나뭇잎 세포로 이루어지는데, 실상 나뭇잎 세포 하나하나의 생명이 온전하게 이루어져야만 그 전체를 이루는 잎사귀와 나무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제아무리 굵은 혈관에 피가 콸콸 흐르더라도 세포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인 모세혈관이 막혀버리면 산소와 영양소를 받아먹지 못한 그 세포는 결국 꺼멓게 죽어 나가는 것이다.
3.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서, 그 몸을 이루는 성도 한 명 한 명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잘 전달되도록 이 교회의 구조는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
교회에 있어서 모세혈관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교구 전담 사역자일까? 아니면 구역장? 소그룹 리더? 목사의 심방? 1:1 제자훈련? 개인 경건의 시간?
한 영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 분명한데,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요즘 같은 비대면의 시대에는 온라인을 타고) 얼마나 한 영혼에게 깊숙이 잘 전달될지는 의문이다.
4. 그러므로 생명이 유지되기 위한 모세혈관의 가장 큰 미덕이자 책임은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제는 열리고, 언제는 닫히는 구조여서는 건강한 모세혈관이라고 하기 어렵다. 만약 교회라는 조직이 공동체성이라는 특유의 미덕을 ‘항상’ 유지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작동하는 것이라면, 한 성도는 그야말로 환하게 켜지지 못한 형광등이 껌뻑껌뻑하는 것처럼 반쯤 죽어 있거나 반쯤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것이라고 해서 물리적인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육체와 영혼이 연합된 신비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영적으로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경험상 더욱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5. 그러나 이 모든 것 – 교회의 물리적인 구조와 조직 – 을 넘어서서 우리가 항상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해답과 위로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 연합은 '항상' 이루어져 있으며, 그 연합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담당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교회의 물리적인 부족함에 나의 걱정과 눈길이 모아지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나의 시선을 돌려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의지하게 만드신다.
물리적인 것으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것으로 물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오늘도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 하나를 바라보며 말없는 기도가 깊어진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