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인내'의 해부학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12

by 따뜻한 손


병원에서 환자분과 하는 대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인내’ 또는 ‘오래 참음’ 일 것입니다. 치료의 과정이 비교적 긴 척추질환이나 류마티스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요.




'인내' 또는 '오래 참음'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Perseverance, patience, endurance, tolerance 등등인데, 영어 성경 안에서도 각각 그 뉘앙스에 따라 다르게 혹은 혼용하여 사용되기도 합니다.


각각의 단어가 갖는 의미가 궁금하여 네이버 어학사전을 뒤져 본래의 의미를 찾아보았더니, 오래 참음의 의미에는 많은 숨겨진 뜻이 있었습니다.


* 우선 Perseverance는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고 유지하면서, 심각한 어려움이나 통증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절벽 위에서 한 발자국만 밀리면 떨어질 위험에 처한 사람이, 더 이상 밀리지 않으려고 참고 버티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자신도 함께 더 단단해져 가는 것이지요.


* Patience는 나중에 더 개선되거나 보상되는 것을 기대하면서, 현재의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patient)가, 치료를 마친 후에 건강하게 될 것을 기다리며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되겠지요.


* Endurance는 주로 시간적인 개념이 강조되어, '오랜 고통의 기간'을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 참음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죠.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를 말할 뿐 아니라, 고통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의 길고 짧음도 포함이 되겠지요.


* Tolerance는 나와 다른 점 또는 틀린 점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발생되는 긴장과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을 기준으로 보면 인간의 죄악을 잠시도 참기 어려우시겠지만, 그 구원의 여정을 이루시기 위해 오래도록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인내’의 숨겨진 의미들은 어디서부터 유래된 것일까요? 그리고 그 의미들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스며들어있는 것일까요?


1.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악 된 사람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심'으로 그 구원을 이루어가신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전하게 인간을 창조하셨던 하나님께서, 타락하고 오염된 인간을 원래의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대로 회복하고자 하시는 계획과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He is patient with you)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2. ‘오래 참으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오시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으심으로 구체화됩니다.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예수 그리스도께 부어지심으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명백하게 선포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이 어두움 속에 있는 인간들을 비추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 빛을 거부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래 참으심'으로 그 구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십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Christ Jesus might display his unlimited patience),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6)




3.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구원의 성취를 받아들이게 하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오래 참으심'이 지향하는 본래의 목표를 향해 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성화의 과정을 밟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완전함에 대한 소망이 우리 안에 심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we wait for it patiently)" (롬 8:23-25)




4.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의 삶 속에서, ‘왜 끝까지 오래 참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록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완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그날을 '아직'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영생을 얻어 '영~~원히'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완성되는 '그날'을 바라보며, 현재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내함'으로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5. 그리고 이런 시각은 나 자신에게 적용할 뿐만 아니라 함께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해서도 서로 가지게 됩니다.


현재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비록 그 완전함이 확연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 있음을 믿음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를 기초로 서로를 용납하는 것과 인내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지고, 이것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Be completely humble and gentle; be patient, bearing with one another in love)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3)




6. 그러니, 성령께서 진정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가신다면, 우리는 성령께서 내 안에 이루어가시는 열매, 즉 '인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내’는 나의 성품 안에 이루어지는 열매 이전에 하나님으로 비롯되는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는 '인내'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patience)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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