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세포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묵상하다
청진기로 듣는소소한 이야기 #15
내가 병원에서 환자를 만나며 외래를 보는 시간은 병원에서 보내는 전체 근무시간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진단검사의학과에서 환자의 혈액, 가래, 소변, 관절액 등등을 가지고 여러 검사를 시행하며 보내고, 그중에 많은 경우에는 환자로부터 나오는 샘플을 가지고 현미경으로 판독하면서 보내게 된다.
바로 얼마 전에 진료실에서 만났던 환자에게서 뽑은 혈액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고 있노라면 때때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진료실에서 인상 깊게 만났던 환자이던지, 오랜 시간 진료실에서 만나면서 이름이 익숙해진 환자인 경우, 시험관에 적힌 환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 환자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 환자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환자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는 환자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현미경에 눈을 대기 전에 깊이 심호흡을 한번 하게 된다. 속으로 '이 환자의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참 묘하다.
이름 모를 환자의 세포나 내가 아는 환자의 세포나 현미경으로 볼 때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아는 환자의 세포는 왠지 더 친숙한(?) 세포처럼 반갑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이상한 직업병이다)
그리고 그 환자를 다시 진료실에서 만나는 날에는 뭔가 남모를 나만의 기쁨이 더해진다.
(그 환자는 모르겠지만) 그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처럼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사람의 깊숙한 내면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날에는 환자가 어떤 증상을 호소하거나 불편한 것을 토로할 때에, 그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게 된다.
그 환자의 수많은 세포들을 관찰한 나로서는, 환자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세포들의 작은 변화나, 세포 사이에 있었던 어떤 사소한 이야기들이 환자의 입을 통해서 나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의 신성(神性)을 유지하시면서도, 그의 인성(人性)으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연약한 단 한 개의 세포인 수정란(受精卵)으로 존재하셨던 적이 있으셨다.
그 신비는 아무리 묵상을 한다고 해도 다다를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신비하기만 하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물의 수많은 세포도 창조하신 주님께서, 친히 그 작은 세포가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전율이 일어날 만큼 놀라운 일이다. (요 1:2-3, 14)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성되고 자라나는 모든 과정을 – 단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에서부터 출발하여 온전한 성인이 되기까지 – 다 아신다.
모든 것을 아시는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아시는 것뿐만 아니라, 친히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에 그 모든 과정을 직접 겪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받는 모든 시험을 똑같이 받으셨으며, 우리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직접 겪으신 분이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없으시며, 이 모든 것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유일하신 분이시다. (히 4:15)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찬찬히 묵상하면서,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바라보실 때, 내가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났던 느낌을 가지고 보시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를 지으시고 친히 이 땅에 오시면서 몸소 경험하여 아시는 주님, 우리의 아주 작은 변화도, 우리의 남몰래 짓는 죄악들도, 우리의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도,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 하나도 허투루 흘려들으시는 법이 없으신 우리의 신실하신 주님. 이 분께서 늘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는 동시에, 주님 앞에서는 어떤 것도 감출 수 없고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은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며 은혜가 풍성한 분이라는 사실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겪은 이 모든 시험을 이기고 우리에게 긍휼과 은혜의 손길을 내미시는 분이 바로 그 분임을 우리는 믿음으로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현미경 앞에서, 그리고 환자와 세포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긍휼과 은혜를 깊이 묵상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