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20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하게 된다.
눈에 띄는 사람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에 백팩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 에스컬레이터를 굳이굳이 걸어 올라가 등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걷는 사람,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면서도 무언가 그 사람의 발끝에는 기대감에 부푼 연두색 풍선이 달려있는 듯한 사람이 있다.
또 어떤 경우엔
'어디로 가는지 알고 가는 걸까?' 싶게 스마트폰에 심취되어 좀비처럼 걷는 사람, 눈을 감고 커다란 헤드폰에 몸을 맡기며 감출 수 없는 그루브를 까딱까딱 발끝으로 절제되게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어딘가 허공을 바라보며 터덜터덜 걷는 사람, 온몸에 관절이라고는 없는 듯 중력에 몸을 맡기고 흐느적흐느적 흘러가는 사람, 무표정한 얼굴처럼 몸짓도 걸음걸이도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은 콩콩 뛰며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발걸음에 그대로 옮겨 놓기도 하고, 어떤 노인들은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는 듯 경직되고 짧은 종종걸음으로 말을 안 듣는 몸을 재촉해 보기도 한다.
공항에서 단연코 멋진 걸음걸이를 선사하는 사람은 항공기 승무원들이다. 아마도 훈련을 따로 받은 듯하다. 전방을 똑바로 주시하고 목과 가슴, 허리를 곧게 펴고 시원시원한 걸음을 걷는 것을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게 뭐 어려운가?' 생각하며 따라서 걸어보면 금방 알게 된다.
'그게 보기보다 어려운 거였구나'
내가 언제 저런 걸음을 걸어보았나? 생각해 보니 딱 한번 공식적으로 걸어 본 적이 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입장!" 소리에 맞추어 주례단까지 걸었던 길고 긴 새신랑의 걸음걸이.
갑자기 리콜된 추억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머리를 흔들며 털어버려야 할 추억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몸은 이미 헌 신랑이 되었으나 출근길만큼은 새신랑의 워킹으로 걸어본다.
오늘은 새로운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