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농축점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21

by 따뜻한 손

'시간의 농축점'


오전 진료를 마치고 갑자기 든 생각이다.


가만히 따져보자.


환자들은 예약시간을 맞추느라 최소한 1시간, 때로는 2시간 전부터 집에서 나섰을 것이다. 병원에 도착했다고 해서 바로 진료를 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환자는 내 앞에서 진료를 보기 위해서 2-3시간을 보내게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오전에 3시간을 진료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시간에 10명의 환자를 본다고 가정하면, 나의 진료시간 3시간에는 10명의 환자들이 소비하는 30시간이 농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시간은 내가 홀로 음악을 듣는 3시간이나, 밤에 잠을 자는 3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농축된 시간이다.




마치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하나의 작고 뜨거운 초점을 만들어내듯이. 시간도 때로는 그렇게 진하게, 뜨겁게, 끈끈하게 흐른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만나고, 누군가와 대화하며,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 더욱 진하게, 뜨겁게, 끈끈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간은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비례하기도 하고, 몇 명을 만나는지에 비례하기도 하며, 그 순간이 사무적인 만남이든지 연인 사이의 만남이든지에 따라서도 농도가 바뀐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짧은 인생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얼마나 많은 시간의 농축점을 경험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가만히 따져 보면, 나 홀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조차도 어떤 작가의 무수한 고뇌의 시간을 시간의 농축점을 통해서 흡수하게 되는 것이며, 어떤 작곡가의 수많은 고통의 순간들을 농축하여 귀로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이건 간에 나의 물리적인 시간 위에 다른 사람의 물리적인 시간이 겹쳐질 때 시간은 농축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수련을 통해서 거리를 단축하는 '축지법'을 쓰지는 못해도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시간의 농축법'은 자유자재로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칙한 생각을 해 본다.




이런 생각은

하루를 하루보다 더 길게 써보기 위한 욕심일까


아니면

하루를 하루만큼 잘 쓰기위한 발버둥일까


때로는

하루를 그냥보내기 아쉬워 내미는 미련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나에게 시간의 농축점을 선사하는 많은 사람에 대한

사람으로서의 도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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