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바다, 바람과 용기, 하늘과 별에 대하여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24

by 따뜻한 손

노을과 바다, 바람과 용기, 하늘과 별에 대하여


해가 지는 것을 보려고 제주의 서쪽 끝 어느 바닷가에 숨 가쁘게 다다랐던 한여름의 어느 날.


그러나 아쉽게도 이제 곧 넘어가는 해는 이별을 고하는 연인의 얼굴처럼, 잠깐 뒷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이내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떠나가는 연인의 속마음이 그러했을까, 못 이룬 사랑에 미련이 남았던 걸까. 떠나보낸 아쉬운 시선이 머무는 그곳엔, 그 후로 오래도록 진한 추억의 잔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왜 이리 추억은 한결같이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워야만 한단 말인가.


저 큰 바람개비들은 왜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아가야만 했을까. 아마도 바람길을 찾아 저렇게 나아가야만 했겠지. 바람에 맞서는 게 그들의 임무이니까.


하지만 보기에도 너무 외롭지 않은가? 특히 저 맨 앞에 있는 녀석은 말이야.


다들 피하고 싶어 하는 바람에 맞서는 그들의 용기 때문에, 넘어진 어떤 이에게는 삶의 동력이 되고, 칠흑 같은 어두움을 밝히는 한 조각 불빛이 되며, 꽁꽁 얼어 곱은 손을 녹일 따스한 보금자리가 되는 것이다.


짙어져 가는 하늘엔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그 별빛은 너무나 차갑고 아름다워서 한여름의 하늘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 위에 서서 바라보는 그 별빛은, 얼음조각에 손을 베인 것처럼 그렇게 시리도록 아팠다.


노을과 바다, 바람과 바람개비, 하늘과 별을 묵묵히 바라보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 그랬다.


별 말 없이, 방파제 위에 걸터앉아, 파도 소리에 마음을 씻으며, 그렇게 별 말 없이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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