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헌혈을 할 수 있을까?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25

by 따뜻한 손

오랜만에 병원으로 헌혈버스가 왔다. 안 그래도 지난번 헌혈 이후에 다시 헌혈 가능하다고 메시지를 받은 터라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헌혈버스에 올랐다.


헌혈 전 체크해야 하는 여러 문항에 체크를 하고 혈압을 재려고 하는데, 이놈의 화이트가운 증후군(병원에만 가면 심리적인 문제로 혈압이 오르는 현상)이 문제가 되었다.


혈압이 높게 측정되어서 헌혈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면서도 혈압을 재려고 마음을 먹거나 혈압계만 쳐다보아도 혈압이 오르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물론 화이트가운 증후군이라는 게 평소에도 어느 정도 혈압이 있다는 걸 시사하기 때문에 완전 정상 혈압인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도 헌혈할 때마다 쉽게 통과를 못하니 이게 더 속이 상한다.


5분간 쉬고 물을 마시고 해도 한번 올라간 혈압이 쉽게 내려오질 않는다. 혈압을 측정하는 간호사가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오후에 다시 와보라고 한다.

'뭐 밥 먹으면 좀 나아지려나?' 하고서는 때마침 점심식사를 쏘신다는 약속에 쫄래쫄래 따라가서는 잘 얻어먹고 돌아왔다.


반신반의하며 다시 헌혈버스에 올라 혈압을 쟀는데 결과는 놀랍게도 한 번에 통과~와우!


혈압이 내려간 게 단지 밥을 잘 먹어서일까? 아니면 밥을 잘 얻어먹어서일까?


사람의 몸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사히 헌혈을 마쳤다. 전혈(whole blood) 400ml는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다. 두 손을 오목하게 모아서 합친 양 정도 되었으니 말이다. 저만한 피가 빠져나가도 몸에는 큰 이상이 없다는 것도 사실 알쏭달쏭한 일이다.


9번째 헌혈에 성공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뿌듯한 마음에 괜히 직원 한 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000 선생~헌혈 몇 번이나 해봤어? 어?"


"저요? 54번 했는데요"

(그 직원은 아직 30살도 안된 젊은 친구였다)


"뭐시라? 54번이나 했다고? 젊은 사람이 언제 그렇게 했대? 어?.... 잘 했네(깨갱)"


괜스레 오랜만에 헌혈 한번 해놓고는 자랑하려고 했다가 뼈도 못 추리고 말았다. 주변에 헌혈 고수들이 많다.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고 다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헌혈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법적인 나이로는 69세까지 가능하다. 10번을 채워보겠다는 애초의 목표가 부끄러워졌다. 은둔 고수를 따라잡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몸을 잘 가꾸어서 그 친구 기록을 따라가 보리라 마음먹어 본다.


아마도 그 사이에 인공혈액이 보편화되어 헌혈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