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23

by 따뜻한 손

J에게


아 내 직업이 의사인 거 처음 알았다고?

그냥 교회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래 나는 주로 몸이 아픈 사람이 찾는 의사이긴 해.


그런데 말이다.


몸이 아픈 사람이 마음도 아프기가 쉽다는 거 알아? 처음에는 여기저기 손가락이며 무릎이며 발가락이며 쑤시고 아픈 데를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그다음에는 관절이 아픈 것 때문에 받았던 억울한 일, 무시당한 것들, 무심한 말들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병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더라는 거지.


또 반대의 경우도 있어. 우울증이 심하거나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사람들이 어느덧 여기저기 관절이나 근육이 쑤시고 아파오고 , 몸이 뻣뻣해지고, 입안이 부르트고, 눈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하더라는 거야.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고,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서로 얽히고설켜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기분이 꿀꿀할 때 달달한 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니? 우리는 경험상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각각은 별개의 영역 아닌가? 기분은 기분이고 달달한 건 달달한 거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기분이 착 가라앉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든지 움직여 보려고 하는 편이야. 그래봐야 그냥 살살 산책하는 정도? 어차피 막 뛸 정도는 안되니까. 물에 젖은 솜처럼 말을 안 듣는 몸뚱이를 질질 끌고 현관을 나서면 그나마 그때부터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단 말이지. 몸도 마음도.


나쁜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살아간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그래서 살면 살수록 고통에 고통만 쌓는 것 같이 여겨질 때가 있단다. 나 자신을 없애는 것으로 모든 고통의 원인을 없애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그나마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남아 있을 때 끝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이 온통 나를 얽어맬 때가 있지. 반대로 나를 이토록 힘들게 만든 사람들에게 내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마음에 스크래치가 남게 하거나 평생 죄책감 속에 살게 하는 방법으로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거야. 그게 내가 몸부림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면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도 그런 생각들로 한참 힘들었던 때가 있었단다.


"힘내라 홧팅!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은 못 해 주겠구나.

그런 말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니까.


그냥 조금만 더 버텨 주라.

조금만 더.


지금의 상황이 탄광의 막장처럼 더 끝없는 암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바늘구멍만 한 빛을 향해서 걸어가는 터널의 중간인지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말이야.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 주라.

끝이 있을 거야.

언젠가 지금의 때를 돌아볼 수 있는 그때가 올 거야.

지금 이 이야기를 너에게 해 주는 나처럼 말이야.


네가 먹고 있는 약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는 얘길 듣고는 조금은 안심했단다. 그 약이 너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다는 건 너 자신을 아주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이제부터 우리 밥 친구 하자.

그냥 뭔가 기분이 꿀꿀하고, 갑자기 뭔가 먹고 싶은 게 땡길 땐 나한테 연락하는 거야 알겠지?


시시콜콜한 얘기 하면서 맛있는 거 같이 먹자.

그냥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뭔가 든든할 거 같잖아 안 그래?


어~어~ 그래 팥빙수 먹자고?

그래 먹자

대신 내가 조금만 뺏어먹을께 ㅋㅋ


그렇게 씨익 웃으니까 보기 좋잖아

너도 웃을 땐 참 예쁘구나.


자주 이렇게 웃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