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던 대로 할게요, 안전하게"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30

by 따뜻한 손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서 환자의 보호자로 역할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가족이 병원에 오거나 입원하게 되는 경우인데, 어떤 경우에든 계속 의사 행세를 하려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고상한 말로 하자면 가족을 돌보는 주치의에 대한 고유 영역의 침범이고, 직설적인 말로 하면 몹시 꼴사나운 추태이다. 빨리 마음을 고쳐먹고 의사이기를 내려놓고 보호자의 입장으로 겸손하게 내려와야 한다.


어머니의 허리가 좋지 않으셔서 수술을 받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


허리뼈 4번-5번 척추고정술을 거의 15년 전에 하시고는 팔순의 나이에 에어로빅이며, 합창단이며, 포켓볼이며 열정적으로 활동하시다가 (포켓볼은 경기도 대표로 출전하여 전국시니어대회 금메달까지 따심), 이제는 허리뼈 3번-4번 사이가 고장 나면서 수술을 피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그 열정이 어찌나 강하시던지 수술을 결정하는 자리에서조차 "수술받으면 포켓볼을 또 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시는 통에 나는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번에도 아픈 허리를 이끌고 전국대회 예선전을 치르셨는데, 어머니께서 가장 유력하다는 후보를 꺾고 1위에 오르셨지만 허리 통증으로 할 수 없이 그 후보에게 대표 자리를 양보하신 상태였다. 나중에 허리 통증이 회복되면 복수혈전이라도 꿈꾸시는 걸까?)


수술은 2명의 의사가 팀을 이루어 진행하는데, 한 분은 옆구리를 통해서 좁아진 허리뼈 3번-4번 디스크 공간을 벌려 인공뼈를 삽입하고 (일반외과), 또 한 분은 등을 통해 기존의 4번-5번 척추고정술을 3번-4번-5번으로 연장하는 수술을 담당하게 되었다 (신경외과).


신경외과 선생님은 같은 연구실을 쓰고 있으니 늘 옆에서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였지만, 일반외과 선생님은 옆방을 쓰고 있어서 수술 당일 아침에 옆방으로 인사드리러 갔다.


"선생님, 저희 어머니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네, 늘 하던 대로 할게요. 안전하게"


보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많이 하지 않나? 그런데 그 선생님은 쿨하게 '늘 하던 대로 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 말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정감 있게 다가왔다.


그렇지. 환자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건 동료 의사의 어머니이건 간에, 자신의 수술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수술의 술기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이것처럼 믿음직한 말이 또 있을까?


보호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또 하나 배우게 된다. 그 선생님의 마음을 내 마음속에도 담아가고 싶어졌다.


누가 환자로 오든지 간에 그렇게.

늘 하던 대로. 안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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