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떡이라면 몰라도 그 환자분이 보내주신 떡을 어찌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겠는가. 떡을 삼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명치끝에 꽉 걸린 것 같다.
그냥 만감이 교차해서, 그냥 죄송하고 면목이 없어서, 그 떡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떡은 언제 다시 볼지 모른 채 기약 없이 냉동실 깊숙한 곳에서 단단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환자의 전화번호로 나에게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OOO 환자의 딸입니다. 어머니가 뇌사자 간이식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셨습니다. 선생님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립니다.'
노심초사 늘 그분을 떠올리며 기도했던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를 그렇게 황망히 보내 드리고 중학생 어린 나이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 환자처럼 가슴속을 다시 응어리지게 만든 분은 없었다.
중학생의 그 무력함 그대로, 다시 나는 아무것도 못 해보고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 어쩌나.
나는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을 하며 보냈단 말인가.
또 그대로 그렇게 보낼 거면.
한 사람 뇌사자의 고귀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한 생명이 그 생명을 이어받아 살게 되었다.
생명을 내어주신 분에게도 감사하고, 지금까지 잘 버텨주어서 수술을 무사히 받은 환자분에게도 감사하다.
그냥 눈물이 많이 흘렀다.
또 만감이 교차한다.
다시 죄송하고, 또 감사하고, 다시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
흐린 날에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눈물이 많은 날에도 글은 써지지 않았다.
마치 잉크에 물을 탄 것처럼, 눈물이 많으면 글이 써지지 않았다.
요새 왜 글을 안 쓰느냐고 여러 사람들이 물어볼 때... 그때가 그랬다.
잉크가 흐려져서... 나는 글을 썼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 뇌사자의 간 이식장면이 나왔다. 같이 드라마를 보던 가족들 앞에서는 간신히 참다가 몰래 서재 방에 와서 혼자 많이 울었다.
마음 한구석 단단하게 얼어붙은 무엇인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는... 냉동고 문을 열고 얼은 떡을 녹여도 될 것 같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