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은 떡을 녹이며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4

by 따뜻한 손


생명은 또 다른 생명으로만 이어진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이후부터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만 그 생명을 이어 나가기로 확정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것이 인간의 유한함과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OOO 환자의 거친 숨소리는 늘 내 마음을 짓눌렀다.


자가면역성 간염(autoimmune hepatitis)으로 오랜동안 치료해 드렸던 분인데, 간을 공격하는 자가항체(autoantibody)로 인해 간에서 자가면역반응과 염증이 일어나면서, 간수치가 올라가고 간이 점차 단단하게 굳어가는 간경변증(liver cirrhosis)이 진행되어 대학병원의 소화기 내과로 전원을 보내 드렸던 분이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있거나 갑자기 아파서 어디 연락할 데가 없을 때에 종종 나에게 전화를 하셨었다.


그 환자분한테서 전화벨이 울릴 때에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또 무슨 일이 생기신 것은 아닌가? 전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등등의 생각이 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전히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배에 복수(腹水)가 차서 횡격막이 눌리면서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태인 것이 분명하다.


보통 그런 상태에서는 누워있기가 더 불편해서 비스듬히 기대어 있어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는데, 그렇게 기대어 전화를 하는 환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그 모습은 내가 어렸을 때 익히 보아왔던 모습이었다.


B형 간염으로 시작하여 간경변증을 거쳐 간암까지 발생하여 오랜 기간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그랬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바닥의 보료를 반쯤 벽에 접어 기대어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의 모습…그런 장면은 왜 시간이 지나도 바래어지지 않는 것일까.




"서…ㄹ...날…에...떠...ㄱ...좀...드시…라고...태…ㄱ...배를…보...냈...는데...자…ㄹ…도차…ㄱ…했나...궁…금…해서...저…ㄴ화...드…려…ㅆ...어...요…"


띄엄띄엄 이어지는 내용은 내 우려를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아까 받은 택배가 그거였구나. 아직 확인도 못 해 봤는데…' 아차 싶었다. 받은 즉시 잘 받았다고 연락을 드렸어야 했었는데, 환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화를 하게 만들다니. 너무나 송구했다.


"제…가...사…ㄹ…수…이…ㅆ…는…방…법은…간…이…식…바…ㄲ…에...없다...는데...어쩌나요...선생님...저는…이…제…죽…는…거.ㄴ...가...요?"


가슴이 미어진다.


답답하다.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숨 가쁜 대화가 이어지고 휴대폰이 뜨끈뜨끈해질 때쯤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택배상자를 열고 연분홍 보자기로 곱게 싸서 보내온 떡을 바라보며 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른 떡이라면 몰라도 그 환자분이 보내주신 떡을 어찌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겠는가. 떡을 삼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명치끝에 꽉 걸린 것 같다.


그냥 만감이 교차해서, 그냥 죄송하고 면목이 없어서, 그 떡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떡은 언제 다시 볼지 모른 채 기약 없이 냉동실 깊숙한 곳에서 단단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환자의 전화번호로 나에게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OOO 환자의 딸입니다. 어머니가 뇌사자 간이식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셨습니다. 선생님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립니다.'


노심초사 늘 그분을 떠올리며 기도했던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를 그렇게 황망히 보내 드리고 중학생 어린 나이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 환자처럼 가슴속을 다시 응어리지게 만든 분은 없었다.


중학생의 그 무력함 그대로, 다시 나는 아무것도 못 해보고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 어쩌나.


나는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을 하며 보냈단 말인가.


또 그대로 그렇게 보낼 거면.




한 사람 뇌사자의 고귀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한 생명이 그 생명을 이어받아 살게 되었다.


생명을 내어주신 분에게도 감사하고, 지금까지 잘 버텨주어서 수술을 무사히 받은 환자분에게도 감사하다.


그냥 눈물이 많이 흘렀다.


또 만감이 교차한다.


다시 죄송하고, 또 감사하고, 다시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




흐린 날에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눈물이 많은 날에도 글은 써지지 않았다.


마치 잉크에 물을 탄 것처럼, 눈물이 많으면 글이 써지지 않았다.


요새 왜 글을 안 쓰느냐고 여러 사람들이 물어볼 때... 그때가 그랬다.


잉크가 흐려져서... 나는 글을 썼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 뇌사자의 간 이식장면이 나왔다. 같이 드라마를 보던 가족들 앞에서는 간신히 참다가 몰래 서재 방에 와서 혼자 많이 울었다.


마음 한구석 단단하게 얼어붙은 무엇인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는... 냉동고 문을 열고 얼은 떡을 녹여도 될 것 같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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